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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브로a 2010. 1. 17. 16:12

불멸의 작사가 (2) - 조명암, 반야월

 

조명암(1913.1.10~1993.5.8)
본명 조영출(趙靈出).
충남 아산 출생, 작사 활동시 예명으로 조명암, 김운탄,이가실 등 사용(김다인이라는 예명 또한 조명암의 예명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함).

193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시), 같은 해 유행소곡 현상공모에 입선하면서 작사활동 시작. 500여곡의 가요를 작사하여 광복이전 히트곡을 포함하여 가장 많은 작품을 남긴 작사가임.

일제말기 군국가요(친일가요)를 다수 발표하였으며 광복이후에는 좌익활동을 하다 1948년 월북함. 한국전쟁(6.25)중에는 진중가요(북한군가)를 다수 발표하였으며 민족예술극장 총장과 문학예술총동맹 부위원장등을 역임함.

작사가의 월북으로 인해 조명암이 발표한 모든 곡이 금지되자 반야월을 비롯한 후배들에 의해 부분개작되고 작사가 이름을 달리하여 계속 불리워짐.

92년 조명암의 곡들이 해금되고 97년에는 그동안 왜곡되어 오던 가사의 수정과 저작권을 회복함.


반야월(1917.8.1~ )


본명 박창오(朴昌吾).
경남 마산 출생, 예명 반야월, 추미림, 박남포, 남궁려,금동선 등이 있으며 가수로 활동시는 진방남으로 활약함.

1937년 태평레코드사에서 주최하는 가요콩쿨에 입상하여 1938년 "불효자는 웁니다"를 취입하여 데뷔. 1939년 "넋두리 이십년" "꽃마차"를 작사하여 작사가로 데뷔함.

40대 이상의 세대가 애창하는 대부분의 곡을 작사하였으며 70년대까지 작사가 중 가장 많은 곡을 작사함(본인조차 정확히 알지 못할 정도로 많으며 확인된 곡만 1100여곡에 이름).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이사(1964), 한국가요반세기 작가 동지회 회장(1974), 반야월 가요작가상 제정(1977)


[ 조명암 작품 ]


1.알뜰한 당신 / 조명암,전수린, 황금심 / 1937


빅타레코드에서 발매한 황금심의 데뷔곡. 본명이 황금동이었으나 예명으로 황금자, 황금심을 사용함. "타향살이"의 고복수와 결혼하여 스캔들없이 소문난 잉꼬부부로 살았음. 34년부터 가요를 작사한 조명암의 최초의 빅히트곡. 이 노래는 "이부풍" 작사로 잘못 알려짐.


2.코스모스 탄식 / 조명암, 김해송, 박향림 / 1939


광복이전 가요계의 소문난 여장부 박향림(본명 박정림)의 대표곡. "오빠는 풍각쟁이" "전화일기" "타국의 여인숙" 등 히트곡이 있으며 일제말기에는 "혈서지원" 등의 군국가요를 부르기도 했음.


3.화류춘몽 / 조명암,김해송, 이화자 / 1940


30년대 초반부터 발표된 화류계를 주제로한 노래 중 가장 백미인 노래로 가수 자신이 "인천권번" 소속 기생출신이라 더욱 사실감을 높인 노래. 이화자는 1930년대후반 이후 대표적인 신민요 가수로 이름을 날리며, 윤기 있는 목소리로 수많은 노래를 불렀지만, "화류춘몽"은 지금까지도 그의 대표작으로 전해지고 있다.


4.눈오는 네온가 / 조명암, 박시춘, 남인수 / 1940


"화류춘몽"의 화자가 기생이라면 이 노래는 손님이 화자가 되어 이룰 수 없는 슬픈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모두 조명암의 작품으로 비극성을 높이고 있다. 이 노래는 반야월의 예명인 "추미림" 작사로 잘못 알려졌다.


5.꿈꾸는 백마강 / 조명암, 임근식, 이인권 / 1940


38년부터 70여곡의 많은 노래를 발표한 이인권의 대표곡. "눈물의 춘정" "꿈꾸는 백마강" "부녀계도" "귀국선" "미사의 노래" "무영탑 사랑" "선죽교"등의 히트곡을 부른 이인권은 광복이후에 작곡가로 데뷔하여 "미사의 노래" "카츄사의 노래" "외나무 다리" "바다가 육지라면" 등의 히트곡을 발표하여 작곡가로도 성공하였다. 이 노래도 "김용호" 작사로 잘못 알려졌다.


6.선창 / 조명암,김해송, 고운봉 / 1941


39년 데뷔하면서 자신의 자서전적인 노래인 "아들의 하소"를 발표한 고운봉이 오케레코드로 적을 옮겨 부른 대표곡으로 오히려 발표당시보다 후에 더욱 유명해진 곡이다.조명암의 월북과 김해송의 납북으로 나중에는 "고명기" 작사와 김해송의 처남인 "이봉룡" 작곡으로 알려진 곡이다.


7.고향설 / 김다인(조명암),이봉룡, 백년설 / 1942


백년설은 서민적인 취향의 노래를 많이 불렀다. 당대 최고의 가창력을 갖춘 남인수와 치열한 경쟁을 벌일만큼 인기를 누린 것도 백년설이 부른 노래 성향과 구수한 목소리가 대중들의 가슴에 파고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절절하게 표현한 이 곡 또한 "추미림"의 작사로 잘못 알려졌다.


8.목포는 항구 / 조명암,이봉룡, 이난영 / 1942


"목포의 눈물"과 더불어 이난영을 목포와 동일한 이름으로 각인시킨 곡이다. 가수로 데뷔하여 매제인 "김해송"에게 작곡을 배운 이봉룡이 동생 이난영에게 만들어 준곡이다. 이 노래는 반야월의 또다른 예명인 "박남포" 작사로 잘못 알려졌다.


9.울어라 은방울 / 이가실(조명암), 김해송, 장세정 / 1946


장세정의 대표곡 중 하나. 이후로도 장세정은 조명암의 가요작품중 마지막에 해당하는 "고향초"를 불러 히트함. 대표곡으로 "연락선은 떠난다" "아시나요" "잘있거라 단발령" "역마차" "항구의 무명초" "고향초" 등이 있으며 일제말기 남인수와 듀엣으로 영화주제가이면서 군국가요인 조명암 작사의 "그대와 나"를 발표하였다.
[ 반야월 작품 ]


1.꽃마차 / 반야월,이재호, 진방남 / 1939


태평레코드에서 이재호 작곡의 "불효자는 웁니다"로 데뷔한 진방남이 이듬해 직접 작사하여 역시 이재호 작곡으로 발표하여 히트하였다. 39년 만주로 공연을 가서 "하얼빈(하루빈)"의 이국적인 정서를 작사한 이 곡은 가사가 바뀌어서 현재 불리고 있다.


2.무너진 사랑탑 / 반야월, 나화랑, 남인수 / 1958


남자의 순정과 여자의 배반을 다룬 비극적인 사랑의 노래이면서 나화랑의 활기차고 발랄한 멜로디가 묘하게 조화를 이룬 남인수의 대표곡이다. 남인수의 모창가수들이 즐겨부르는 노래이기도 하다.


3.삼등 인생 / 반야월,김교성, 김용만 / 1958


민요조의 노래를 많이 부른 김용만의 대표곡으로 세태에 대한 풍자곡이다. 한때는 저속하다는 이유로 금지가요가 되었다.


4.남성 넘버원 / 반야월,박시춘, 박경원 / 1958


당시의 사회를 풍자한 박경원의 대표곡이다. 다분히 유교적인 전통상을 강조한 가사로 추정하여 전쟁이후 자유당 말기의 혼란한 사회에 대한 일종의 비판으로 보인다. 박경원은 그밖에 "이별의 인천항" "나포리 연가" 등의 히트곡을 남겼다.


5.가는 봄 오는 봄 / 반야월, 박시춘, 백설희, 최숙자 / 1959


59년에 나온 동명의 영화주제가다. 한때 영화사를 경영하던 박시춘이 제작과 음악을 겸하였으며 문정숙, 최무룡이 주연으로 출연하였다. 노래가 히트하면서 한때 가정부를 구할때는 이 노래를 부를 줄 아는가 시험을 봤다는 일화도 있다.


6.유정천리 / 반야월,김부해, 박재홍 / 1959


이민자, 김진규가 주연으로 출연한 남일홍 감독의 59년 동명의 영화주제가. "비 내리는 호남선"이 신익희 선생과 인연이 있는 노래라면 이 곡은 조병옥 박사와 연관이 깊다.민주당 대통령 후보 조병옥 박사가 투표 며칠전에 세상을 떠나자 "...장면 박사 홀로 두고 조박사는 떠나갔네..."로 개사되어 추모곡처럼 불려졌다.


7.외나무다리 / 반야월,이인권, 최무룡 / 1962


1962년 강대진 감독, 김지미, 최무룡 주연의 동명 영화 주제가. 최무룡이 직접 불러 영화와 함께 히트하였다.


8.벽오동 심은 뜻은 / 반야월, 박시춘, 이미자 / 1964


신영균, 최은희가 주연으로 출연한 64년 이규웅 감독의 동명 영화주제가. 영화에서는 "박초월"이 불렀고 음반으로는 이미자가 발표했다. 벽오동은 암꽃과 수꽃이 한몸이고 잎은 져도 가지는 푸른 몸을 가진다해서 고전적인 사랑의 테마로 즐겨 인용된다.


9 .두메산골 / 반야월,김광빈, 배호 / 1964


비운의 천재가수 배호의 출세작이다. 이곡은 원래 김해광이라는 무명가수가 63년에 오리엔트레코드사에서 먼저 취입했다. 배호는 이때까지 건강한 목소리를 유지했으나 다음 음반인 "황금의 눈"을 취입하면서부터는 병세가 나타남. "두메산골"은 배호를 방송계에 최초로 데뷔시킨 노래이나 오리지날 취입가수는 "김해광"이다.


10.소양강 처녀 / 반야월, 이호, 김태희 / 1969


실제 춘천 출신의 가수지망생 윤기순(당시 18세)을 모델로 하여 만들어진 곡으로 오히려 무대가 된 "소양강"보다 더욱 유명한 노래다. 무명가수 김태희를 스타로 만들어 주었으며 춘천에서는 매년 "소양강 처녀" 선발대회와 동상건립, 캐릭터 선정은 물론 노래비 등이 세워졌다.


11.일자상서 / 반야월,박시춘, 김부자 / 1971


부푼 꿈을 안고 서울로 무작정 상경하는 사람들이 많을 때 자식된 도리와 어떻게 살것인가를 염두에 두고 작사하였다는 곡이다. 민요가수 김부자의 대표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