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불로가는도반

조계총림 송광사 방장

시나브로a 2010. 2. 1. 20:52
  
밥짓고 청소하는 일도 부처님 공경하듯 하세요 / 보성스님

(조계총림 송광사 방장)
흐르는 물은 머물지 않습니다. 모든 존재는 성주괴공이라는 변화를 겪고, 애지 중지하는 몸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늙어갑니다. 지금은 젊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행동하지만 그것도 잠시예요. 예외 없이 몸뚱이라는 기계는 고장이 나게 마련입니다. 누구도 그렇지 않도록 할 수 없습니다. 이 이치를 깊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인간으로서 앞뒤를 살피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죠. 그리고 수행도량이 생긴 뜻이 무엇인지도 잘 살펴보세요. 해인사, 통도사, 송광사 등은 인도나 중국 사람이 지은 게 아니고 우리 나라의 선지식들이 인간을 재조명할 수 있는 터가 되길 바라는 원을 담아 지었어요. 그러니 그 터에 살고 있는 출가 수행자들은 더욱 더 꼼꼼하게 그 어른들의 근본 뜻에 어긋나지 않는지, 그분들의 뜻에 어긋나지 않게 사는 길이 뭔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것이 부처님의 뜻과 앞서간 선지식들의 은혜를 갚는 길입니다. 머리 깎고 절에 왔으면, 밤에 자다가도 머리를 만져보면서 출가정신 되새겨야 해요. 출가자가 세상 사람들의 모범이 되어야 부처님 가르침이 바로 섭니다. 새해를 맞는 우리의 마음가짐도 별 것이 없어요. 새해라고는 하지만 갑자기 사람이 새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 해가 뜨고 해가 지는 똑같은 날짜를 반복할 뿐입니다. 새해라고 해가 갑자기 모가 나는 것도 아니며, 빛이 청색을 띠거나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러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되새겨 스스로의 마음을 닦아 가겠다는 다짐이 중요해요. 즉 의식구조가 다시 정립이 돼야 한다는 말입니다. 의식구조의 정립에서 중요한 것이 승가에서는 계율이요, 사회에서는 예의범절입니다. 다른 생각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모인 사회에서 계율, 예의 범절은 의식을 바로잡는 길잡이가 되어 줍니다. 많은 사람이 모여서 전체를 위해 좋은 것을 하나 둘 정한 것이 자연스럽게 계로 정착이 된 것이죠. 나를 내세우는 마음을 내려놓고 전체의 질서를 생각하는 것이 계이니 어려울 것 없어요. 어떤 이들은 부처님의 계가 지금 시대에 맞지 않다고 말을 하는데 그것은 모르는 소립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버릴 게 없어요. 천수경에 보면 ‘원아조득선방편(願我早得善方便)’이라는 구절이 있죠? 이 말은 부처님의 뜻도 저버리지 않으면서 나에게도 좋은 방편은 반드시 있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노력은 않고 계를 탓하고 시대를 변명으로 삼는다면 질서가 흔들리고 이해관계에 얽혀 아름답고 건전한 길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니 다만 한 가지만이라도 부처님의 뜻을 철저하게 따르겠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해요. 천수경 하나만 잘 새겨도 모든 것을 껴안아 주는 허공의 감사함을 알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수행력이 약한 것은 탓하지 않고 부처님 말씀에 대해 옳고 그른것을 논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10년을 절에 다녀도 제대로 한번 살아 보겠다는 마음가짐이 없는 사람에겐 아무리 법문을 해도 소용이 없어요. 마찬가지로 출가자는 출가자로서, 또 재가자는 재가자로서 자신의 자리를 잘 지키려는 노력과 실천이 따라야 합니다. 무엇을 하더라도 부처님께 절하듯이 성의껏 하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도량에서 비질을 하거나 집에서 밥을 짓더라도 부처님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해보세요. 그러면 저절로 원만한 생활이 열립니다. 지금 병원에는 사람들로 넘쳐납니다. 80% 이상이 식생활의 문제로 병이 온다고 합니다. 그러니 가족의 식생활부터 정성스런 마음으로 챙긴다면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이죠. 이게 기본을 바로 세우는 일입니다. 나는 법문 들으러 오는 보살들한테도 외식만 즐기고 가족들 밥 챙겨주는 데 게으르면 법문들을 자격이 없다고 합니다. 작은 일 같지만 사회를 이루는 기본인 가정에서 남편과 자식, 아내에게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것, 그것이 곧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하는 노력입니다. 그 노력을 잠시라도 놓치지 않고 매순간 이어가는 것이 불법의 요체라고 볼 수 있죠. 영원히 살 것 같지만 우리가 산다는 것 속에는 죽는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어요. 먹고 자고 일하는 일상이 반복되고 반복되면 결국 우리가 가 닿는 곳이 어디입니까? 죽음이라는 것이 딱 입을 벌리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말을 해도 참 험악하게 한다고 할 지 모르지만 사는 것이 결국 지수화풍 사대로 뿔뿔이 흩어지는 과정임을 명확히 알아야 됩니다. 언제 갈지 모르는 인생 편안하게 가는 방법은 없나? 내 몸뚱이를 편안하게 버리고 집착 없이 가는 방법은 없나? 하고 깊이 살펴보는 것에서 삶에 대한 새로운 태도, 즉 의식구조를 새롭게 하는 길이 열립니다.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를 좇아 일으켰던 망령된 생각을 멸하고 그 분별마저 없어진 본래 공(空)한 자리를 알게 되면 마음은 거리낌이 없는 편안한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그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물거품이 본래 물이었음을 알게 되는 것이지요.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어둠과 어려움은 물에서 생겨난 물거품과 같은 것입니다. 누가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고 내가 좋고 싫은 분별을 일으키고는 좋은 것을 취하기 위해 거짓말하고 도둑질하면서 만들어 놓은 어둠입니다. 그 어둠 때문에 스스로가 괴롭고 그 괴로움 때문에 주변 또한 편안할 수가 없지요.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돌이켜서 해결해야겠다는 한 생각을 내는 순간 돌파구가 생깁니다. 이때 노력이 중요합니다. 노력하지 않으면 겹겹이 둘러 싼 어둠 속에서 헤어날 수가 없습니다. 다행이 우리는 온갖 허망한 것으로 허망하게 놀아나고 있는 세상에서 부처님 법을 만났습니다. 종교 이전에 마음가짐의 문제를 일깨워주는 부처님 말씀을 듣게 되었으니 부처님 말씀 하나라도 내 것으로 만들겠다는 노력과 실천을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합니다. 부처님 당시에 앙굴리마라라는 살인자가 부처님께 귀의한 일화가 있습니다. 앙굴리마라는 잔혹무도한 살인자로 부처님을 죽이려 했습니다. 앞에서 걷고 있는 부처님을 죽이기 위해 앙굴리마라가 외쳤습니다. “멈춰라!” 그때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죠. “앙굴리마라여, 나는 이렇게 멈춰 서 있다. 너는 어리석어 무수한 생명을 해쳐왔고 나를 해치려 하지만 나는 여기 이렇게 멈춰 있어도 마음이 평온하다. 너도 이제 그만 멈추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부처님께서는 무엇을 멈추라고 한 것입니까? 이것이 화두입니다. 앙굴리마라는 부처님의 멈춰라 하신 뜻을 알아듣고 귀의해 불제자가 되는데 그 이후에도 사람들은 살인자라고 앙굴리마라를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과거를 탓하지 마라. 지금의 앙굴리마라만을 봐라”는 자비심 넘치는 말씀으로 사람들의 비난을 잠재웠죠. 이처럼 부처님의 가르침 속에는 과거를 탓하지 않고 오늘을 가장 바람직하게 사는 길이 있습니다. 오늘을 가장 행복하게 사는 것보다 더한 행복의 길은 없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갖추신 부처님의 길을 따르는 불제자라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부처님을 따르겠다는 간절한 마음이면 내 안에도 부처님의 원만자재한 모든 능력이 갖추어져 있음을 알게 됩니다. 밥을 할 때도 적당한 물과 온도, 그리고 시간이 있어야 맛있는 밥이 되듯이 노력을 기울여야 내면의 불성을 일깨울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잘 진찰해서 처방했으니 약을 먹고 안 먹고는 각자에게 달린 것입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생각을 가다듬어서 부처님께서 제시해 놓은 길을 따라 스스로 깨달으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노력과 실천을 통해 내가 그 동안 모르고 있던 것을 조금 더 살피면서 능히 스스로를 다스려 남도 이끌 수 있는 그런 능력을 갖추어 나가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앙굴리마라에게 하셨던 “멈춰라”라는 말을 스스로가 스스로를 향해 할 수 있을 때까지 생활 가운데서 실천하는 불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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