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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문학특선 영화감상> 에밀리 브론테 원작

시나브로a 2011. 3. 31. 13:18

 

 

1. 작품 줄거리

 끊임없이 불어오는 바람을 맞고 서 있는 탓에 '폭풍의 언덕'이라 불리는 요크셔 농장의 주인 언쇼는, 리퍼블에서 한 명의 고아를 데리고 돌아온다. 그는 그 아이에게 히스클리프라는 이름을 지어 주고, 자신의 아들인 힌들리, 딸 캐서린(케시)과 함께 키운다. 힌들리는 처음부터 히스클리프를 적대시했으며 사사건건 그를 학대한다. 그러나 캐서린과 히스클리프는 일종의 원초적인 끈에 의해 서로 굳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 아버지 언쇼가 죽자 힌들리의 학대는 더욱 심해지고, 그로 인해 두 사람을 연결하는 끈도 더욱 강해진다. 힌들리는 결혼하여 아들 헤어튼을 낳게 되는데, 그의 학대는 처자에게까지 미친다.

 우연한 기회에 유복한 지주 린턴 가(家)에 초대를 받아가게 된 캐서린은, 히스클리프를 사랑하면서도 오빠 힌들리가 지배하는 지옥과 같은 생활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그녀를 사랑하게 된 그 집의 아들 에드거의 구혼을 받아들인다. 그녀의 결혼 소식을 듣게 된 히스클리프는 아무  말없이 종적을 감춰 버린다. 캐서린은 필사적으로 그의 행방을 수소문하지만 끝내 찾지 못하고 결혼식을 올린다.

 6∼7년 뒤, 폭풍의 언덕에 다시 돌아온 히스클리프는 유복한 신사로 변모해 있으나, 캐서린에 대한 사랑과 힌들리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에 대한 복수심으로 그의 내부에서는 강렬한 증오가 불타오르고 있다. 그의 복수심은 힌들리에게 학대받았다는 것과 캐서린이 린턴과 결혼했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그는 힌들리를 자포자기 상태로 내몰고 도박에 손을 대게 해 전 재산을 빼앗은 뒤, 그의 아들을 하인으로 부리며 자신의 당한 것처럼 학대한다. 게다가 증오심에서 에드거의 누이동생 이사벨라를 유혹하여 결혼한다. 그리고 캐서린에게까지 접근하여 에드거를 괴롭힌다. 캐서린은 히스클리프로 인해 번민하며, 딸아이를 낳다가 죽고 만다. 그러나 그녀의 죽음 앞에서도 캐서린에 대한 히스클리프의 사랑은 좀처럼 수그러 들지 않는다.

 더 이상 남편의 학대를 견딜 수 없어 이사벨라는 집을 나가 린턴을 낳고, 아들이 12살이 되던 해 세상을 떠난다. 또한 힌들리도 알콜 중독과 실의에 빠져 죽고 만다. 히스클리프는 린턴 가의 재선을 손에 넣기 위해 린턴과 캐서린의 딸을 강제로 결혼시키지만, 린턴은 곧 병으로 죽는다. 또한 에드가마저 세상을 떠나자, 복수의 불길을 다 태워 버린 히스클리프도 캐서린의 환영(幻影)을 쫓으며 죽어간다. 이제 언쇼 가와 린턴 가에 남은 사람이라고는 힌들리의 아들 헤어튼과 어머니와 같은 이름을 가진 캐서린뿐이다. 두 사람 사이에는 어느덧 사랑이 싹트게 되고 둘은 곧 결혼식을 올린다. 이렇게 해서 3대에 걸친 폭풍의 언덕에서 벌어진 사랑과 복수의 이야기는 막을 내리게 된다.

 

2. 등장 인물

(1) 히스클리프(Heathcliff) - 언쇼가 주워온 아이로 캐서린을 사랑하나 이루지 못하자, 이에 대한 복수극을 펼치는 거친 성격의 소유자로 캐서린이 죽은 후에도 잊지 못하고 사랑하는 인물이다.

(2) 캐서린 언쇼 - 언쇼의 딸이자 힌들리의 누이동생으로 정열적이며, 순수한 감정을 지닌 여인이었으나, 현실적인 면이 있어 옛 정을 버리고 불행한 가계사를 만드는 인물이다.

(3) 힌들리 언쇼 - 언쇼 집안의 아들로 거칠면서도 심약한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도박과 마약 등으로 폐인이 되며 결국 파멸하고 만다.

(4) 프랜시스 언쇼 - 힌들리의 아내로 약간 정신병적 증세를 보이는 무지의 여인이다.

(5) 에드거 린튼 - 귀족적이며 신사적인 기품의 소유자로 캐서린에게 청혼하여 결혼을 하게 되지만, 히스클리프의 복수극에 휘말려 희생되는 인물이다. 드러시크로스 저택의 주인이다.

(6) 이사벨라 린튼 - 에드거의 여동생으로 히스클리프와 결혼하지만, 철없는 눈먼 사랑으로 인하여 비인간적으로 이용당하는 인물이다.

(7) 헤어튼 언쇼 - 힌들리의 아들로 거칠게 자라 히스클리프에게 이용당하는 인물이다.

(8) 캐서린 린튼 - 캐서린과 에드거 린턴 사이에 난 딸로, 어머니와 이름이 같으며 정열적으로 히스클리프의 아들인 린튼과 정을 나누다 강제로 결혼하지만 린튼이 죽고 난 뒤 힌들리의 아들 헤어튼과 결혼한다. 순수한 마음을 가진 아름다운 여인이다.

(9) 엘렌 딘(넬리) - 포근한 모성애를 지닌, 로크우드의 가정부로 언쇼 집안의 하인이었으며, 섬세한 재치와 포용력이 있는 인물이다. 이 소설은 그녀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10) 조세프 - 워더링 하이츠에서 심부름하는 영감이다.

(11) 로크우드 - 스러시크로스 저택에 세 들어 살다가 가정부 넬리 딘으로부터 폭풍의 언덕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듣게 되는 인물이다.

(12)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가계도

 

            언쇼 집안              린튼 집안                                      

                  |                      |       

              +---+-----+          +-----+----+       

              |         |          |          |       

       

프랜시스 -+- 힌들리  캐서린 --+- 에드거  이자벨라 --+--- 히스클리프  

          |                   |                     |

          |                   |                     |       

            

        헤어튼 ------- 캐서린 린튼  ------------  린튼       

             (사랑과 결혼)         (강제결혼과 사별)  

 

3. 작품 해설

(1) 작품의 탄생 과정

 [폭풍의 언덕]은 대단히 중요한 작품이다. 그것이 지닌 깊은 비극성과 시성(詩性)은 곧잘 셰익스피어의 비극 - 특히 [리어왕] - 과도 비교될 정도이다. 그러나 이러한 명작(名作)도 그것이 처음 나왔을 때는 오해되고 또 낮게 평가되었다. 그녀의 언니 샤롯 브론테마저도 1850년에 출판된 소설의 서문에서 "어줍잖은 작업장에서 간단한 연장으로 하찮은 재료를 다듬어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내용이 어둡고 사악하다는 세상의 비난을 상당히 오랫동안 받아야만 했다. 겨우 19세기 말이 되어서야 많은 시인, 문학인들에 의해 비로소 그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마침내 현대 최고의 소설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기에 이르렀다. 너무 깊은 작품은 그 시대 사람의 이해를 얻을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멜빌의 [백경]이나 스탕달의 [적과 흑] 등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렇다 하더라도 이러한 작품이 시골 구석에 묻혀 단조롭게 살아 온 한 여성에 의해 씌어졌다는 것은 당시 사람들을 대단히 놀라게 했고 심지어 의혹을 품게 했으며, 또 갖가지 억측조차 낳게 했다. 타락한 오빠 브랜웰이 그것은 내가 썼다고 말한 적이 있으나 오늘날 그것을 믿는 학자는 한 사람도 없다. 이 [폭풍의 언덕]을 세계 10대 소설의 하나로 손꼽는 서머셋 모옴같은 소설가는 에밀리에게 어떤 정열적인 체험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하고 있으나, 그 증거는 찾을 수 없다. 그보다는 이 작품의 출생 유래를 다른 데서 찾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어쨌든 그녀는 날카로운 관찰력을 지닌 인간이었다. 거칠고 본능적인 요크셔 지방 농민들의 실생활이 여기 지극히 극적(劇的)인 형태로 리얼하게 포착되어 있는 것도 한 원인이 된다.

(2) 작품의 의의 - 인간의 본질에 대한 정밀한 탐구

① 바로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멜빌의 [백경]과 더불어 영어로 씌어진 3대 비극으로 꼽히고 있다. 다소 로맨스풍을 띤 이 작품은 주제와 표현기법에 있어서 당대의 다른 소설들과는 판이하게 다르지만, 소설의 역사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18세기 말 요크셔의 외딴 마을에 살고 있던 언쇼 집안과 린턴 집안에 히스클리프라는 부랑아가 몰고 온 파문을 짧은 서술이 삽입된 제3자의 회상체로 그리고 있다. 요크셔 황야를 무대로 펼쳐지는 격정과 증오를 다룬 작품으로 풍부한 상상력이 돋보인다.

② 궁벽한 시골구석에 묻혀, 마치 극지의 꽃처럼 무명의 짧은 생애를 살다 간 한 불행한 여성에 의해 기적적으로 탄생한 <폭풍의 언덕>은 구체적 현실의 세계와 그것을 초월한 정신세계를 그리고 있다. 자연계와 초자연계가 융합하고 있는 영혼의 세계이며, 여기서는 죽음 자체도 최후가 아니라 영혼의 개방이며, 사자의 망령은 생자의 영혼과 신비적으로 교류하고 있다. 마지막 장면에 주인공인 히스클리프가 캐서린의 망령을 보면서 황홀경 속에서 죽는 장면이 바로 그러한 것이다. 사랑이 바로 증오로 바뀔 수 있고, 그 두 감정이 동일한 요소에서 온다는 것도 재미있는 인간 심리의 내면이 아닐까 ? 이 소설은 인간의 본질을 탐구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3) 주인공 히스클리크 - 의지의 화신(化身)과 운명적 비극

 히스클리크는 집시(Gypsy)와 같은 풍모에 수려한 얼굴을 지닌 남자다. 그리고 그의 행동거지도 다소 거친 일면을 보이지만 신사다운 면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런 외모와 신사적인 행동 뒤에는 '번개같고 불같은' 영혼과 '예의도 교양도 없는 야만'이 숨어 있다. 평온한 외모 이면에, 어두운 원초적 정열과 결코 길들여지지 않는 야성을 숨긴 남자가 바로 히스클리프인 것이다. 그는 동적인 무한한 에너지를 가졌으며, 그러한 의미에서 초인적인 면모를 지녔다고 할 수 있는데, 그의 복수와 애증(愛憎) 또한 인간적인 스케일을 뛰어넘고 있다. 그의 사랑은 죽은 연인의 무덤을 파헤쳐 그 시체를 포옹하게 할만큼 강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영혼과 하나가 되기 위해 죽음을 구할 만큼 강렬하다. 또한 애증은 두 가문을 완전한 파멸로 이끌 만큼 끈질기다.

 이러한 히스클리크프와 신비한 끈으로 맺어져 있는 캐서린 역시 평범한 인간의 범주를 넘어서는 존재로 히스클리프와 '같은 영혼', 히스클리프와 같은 '깊은 마음'을 갖고 있었다. 약하고 차가운 '달빛과 서리'에 지나지 않는 다른 남자들에게는 만족을 얻지 못했으며, '번개같고 불같은' 영혼을 지닌 히스클리프만이 그녀에게 완전한 만족을 줄 수 있었던 것이다. '달빛과 서리'에 지나지 않는 에드거를 선택한 그녀의 잘못은 비극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로 인해 두 사람은 영원성을 획득하게 된다.

 이야기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곳은 요크셔의 황야(荒野)인데, 그곳을 둘러싼 자연 역시 두 사람의 사랑과 잘 어울린다. 이 황야에 불어대는 거친 폭풍은 그곳에 자라고 있는 나무와 풀, 히스같은 풀들을 모두 한 방향으로밖에 뻗지 못하게 할만큼 혹독하고 강하다. 그로 인해 그곳은 순수하고 청정할 수밖에 없으며, 인위적인 것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다. 폭풍의 언덕에 부는 바람은 인간의 역사 이전부터 불고 있었던 것으로, 두 사람의 사랑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4) 작품의 상징성

 이 [폭풍의 언덕]이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인가 ?

이것은 독자 스스로가 직접 맞부딪쳐 포착해야 할 것이다. 다만 한 가지 감상을 말한다면 이것은 파격적인 자연이라고나 할까. 우리는 첫째 망령(亡靈)의 출현에 깜짝 놀란다. 그것은 낭만주의 문학의 영향 때문인지 또는 작가의 기발할 정도로 강한 상상력의 소산인지는 몰라도 이상하게도 우리는 거기에서 "시적(詩的) 진실", 즉 리얼리티를 초월한 리얼리티라고 할 그러한 것을 느끼고 또 거기서 어떤 연민과 공포감마저 감지하게 된다.

 여기 등장하는 인간들을 살펴보아도 그들은 흔히 아무 데서나 볼 수 있는 존재들은 아니다. 우선 생사(生死), 선악(善惡), 이성(理性), 모든 인간 세상의 척도를 넘어선 연애가 거기 있다. "나는 히스클리프"라는 캐서린의 말만큼 강렬한 인상을 주는 것은 없다. 그녀의 생명은 히스클리프와 하나가 되어 타오르고, 그리고 그들은 멸망의 심연(深淵)을 넘어서라도 그 사랑의 의지를 이루려고 한다. 선과 악, 영과 육, 사랑과 증오, 이 상반된 모든 것으로 싸우고, 그 균열 사이로 인간성의 가장 깊숙한 심연을 우리는 엿볼 수 있다. 또 한편으로 이 지상적(地上的)이고 육체적인 격정은 항상 멀고 신비로운 천상적인 것을 지향하고자 한다.

 에밀리 브론테는 이 작품과 그녀의 시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항상 지상에의 집착과 영원에의 사랑을 마음 속에서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하나의 훌륭한 상징적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독자 여러분은 어떤 것을 느끼고 계신지 ?

 

4. 작품의 구성

 이 [폭풍의 언덕]은 대단히 복잡한 구성을 하고 있다. 먼저 이 사실을 알고 소설을 읽는다면 보다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의 나레이터가 등장하는 회상체의 형식이고, 두 시간이 서로 교차(시간의 역전 현상)하며, 2대에 걸친 사람들의 비극이 담겨져 있는 것이 바로 그 점이다.

 소설의 이야기는 1801년경에 은거할 땅을 찾아 도시에서 이 황야로 들어와 드러시크로스 저택에 세들어 "폭풍의 언덕"이라 불리우는 집을 방문한 로크우드라는 한 신사로부터 비롯된다. "폭풍의 언덕"이란 "Wuthering Heights"의 번역이고 "Wuthering"이란 비바람을 뜻하는 영국의 방언이다. 그리고 그는, 언쇼와 린튼 두 집안의 2대에 걸친 역사를 아는 늙은 가정부 엘렌(넬리) 딘에게서 이야기를 유도해 낸다.

 그리하여 이야기는 다시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어언쇼우씨가 히스클리프라는 아이를 주워오는 1771년 무렵에서부터 시작된다. 어언쇼우 집안의 딸 캐서린을 사이에 둔 히스클리프와 에드거 린튼 두 청년의 갈등이 일어나고 또 캐서린의 오빠 힌들리와 히스클리프가 서로 증오하게 되어 히스클리프가 가출하고 만다. 캐서린과 에드거와의 결혼, 이렇게 이야기는 복잡하게 전개된다. 그러나 6 ∼ 7년이 지난 뒤에 히스클리프(실제로는 왕자로 밝혀짐)는 부자가 되어 돌아와 먼저 힌들리에게 복수하고 캐서린과 재회하여 서로 굳게 사랑한다는 것을 확인한다. 그러나 히스클리프는 에더거의 누이동생 이사벨라와 결혼하고는 그녀를 학대한다. 캐서린은 1784년경에 죽고 만다. 히스클리프의 캐서린을 향한 애모의 정은 그녀의 죽음으로도 식을 줄을 모른다.

 이 뒤로 다음 세대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히스클리프와 이사벨라와의 사이에 난 사내아이 린튼과 에드거와 캐서린 사이의 딸 캐서린(어머니와 같은 이름을 지음)과의 결혼, 다음에 그 린튼의 죽음, 그리고 미망인이 된 캐서린(딸)과 캐서린(어머니)의 오빠 힌들리의 아들 헤어튼과의 사이에 한 줄기의 사랑이 싹트는 대목에서 이야기는 끝난다.

 이러한 내용이 단순히 외곬으로 엘렌(넬리) 딘에 의해서만 전개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듣는 사람인 로크우드는 그 동안에 런던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또 이곳으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5. 에밀리 브론테 - 그녀가 말하고 싶었던 것

 에밀리 브론테가 이 세상에 남긴 것은 단 한편의 소설과 완성되지 않은 단편적인 문장을 포함하는 193편의 시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이 얼마 되지 않는 작품으로 그녀의 이름은 세계 문학사의 거대한 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에밀리는 풍부한 인생 경험을 쌓은 사람도 아니고 해박한 3지식을 갖춘 여성도 아니다. 그런데 어찌해서 이와 같은 훌륭한 작품을 쓸 수 있었는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어쨌든 그녀의 일생은 30년 6개월로 짧았고 그것도 거의 잉글랜드 북부의 벽촌에서 살게 되었으며 더욱이 가족 이외의 사람들과 접촉이 거의 없었다고 할 만큼 외롭게 지냈다. 더구나 가족들과도 흉금을 털어놓고 이야기하는 일은 거의 없었으며, 고작 동생인 앤이 그녀의 둘도 없는 친구였다. 이렇듯 사람들과의 교제를 싫어하고 고독을 즐겼던 에밀리로서는 마음속으로도 사랑을 체험해 본 모습이 엿보이지 않는다. 그러한 에밀리에게 있어서 독서는 외부 세계로 향해서 열려진 단 하나의 창문이었는데 그 범위도 당시의 여성 일반의 수준으로 보아서 좁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결코 넓지도 않았던 것 같다. 언니 샬로트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읽을 만한 책으로서 밀턴, 셰익스피어, 고울드 스미드, 스콧, 바이런, 워즈워드, 사우디의 이름을 들고 있는데 에밀리의 문학적 소양도 대체로 그 정도의 것이 아니었는가 생각한다. 그 밖에 브뤼셀에 유학했을 때 독일어를 습득하고 호프만 등 독일 낭만파의 작품을 읽었던 듯하지만 어쨌든 그녀가 접했던 것은 그리스 로마 이래의 오랜 문학적 전통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해서 이렇듯 몸과 마음을 불태우는 격렬한 정념을 묘사할 수 있었으며 저렇듯 힘찬 형이상학적 인식을 이야기할 수 있었는지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강력한 정신력과 연약한 육체의 끝없는 투쟁을 계속하였던 그녀의 성격, 독일 낭만주의에 대한 애호심, 집안에서 친척들의 죽음을 빈번히 당했던 환경, 그리고 이 작품의 배경이 되어 잇는 요크셔 지방의 황량한 풍경의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그러나 내용의 기괴한 성격을 갖고 있는 이 작품이, 벽촌에 묻혀서 불행한 일생을 마친 한 여성의 손에 의해서 출현되었다고 하는 것 그 자체는 기적적인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탄생된 작품도 작자인 그 사람과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고난의 길을 걷지 않으면 안되었다. 언니 샬로트, 동생 앤과 공저인 시집(1846년)이 에밀리의 처녀작이었는데 넉넉치  못한 돈을 털어서 자비 출판한 이 시집은 일년이 되어도 팔린 것은 겨우 2권이었다고 한다. 「폭풍의 언덕」도 오늘날에는 세계 10대 소설의 하나로 추천한다든지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멜빌의 「백경」과 더불어 영어로 쓴 3대 비극의 하나로 꼽게 되었지만, 발표 당시에는 거의 묵살되어 <야수적이며 반도덕적인> 작가며 <이 소설의 등장 인물은 모두 흉칙하고 음산하다>는 부정적인 것으로서 독자들에게 도저히 맞지 않는 작품이었다. 소설을 쓰는 세 자매라고 하는 진귀함이라든지 특히 시대적으로 영합된 샬로트의 존재가 없었던들 어쩌면 이 작품은 햇빛을 보지 못하고 말았을 것이다. 「폭풍의 언덕」이 정당한 평가를 받게 된 것은 19세기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20세기에 이르러서였다. 그 동안에 에밀리가 받은 음침한 반도덕적 작가라고 하는 누명은 참으로 시대를 초월한 선구자의 월계관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에밀리와 같은 시대를 산 사람들, 즉 언니인 샬로트 브론테나, 디킨즈나, 삭거레나, 개스켈 부인이나 그 밖의 사람들이 도덕적이거나 교훈적인 인간의 모습에 온갖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던 데에 반해서 에밀리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개인의 실존이었으며, 체계적인 도덕이 아니라 정열과 의지에, 일상적인 현실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궁극적인 진실이었다. 이러한 작가에 대해서 부도덕하다든지 반도덕적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20세기의 독자라면 이 작품에서 온갖 육체와 영혼을 불태워 가며 증오하고 사랑하고 자기의 정념에 끝가지 충실하게 살고 죽어 가는 히드클리프에게서 자아(自我)의 가장 순수한, 그리고 아름다운 연소(燃燒)를 인정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감수성(感受性)의 획기적인 의의가 있는 것이다.

 

6「폭풍의 언덕」 내용 분석

 

이야기하는 사람                         →   엘렌(넬리) 디인

듣는 사람                                  →   로크우드

폭풍의 언덕의 저택 늙은 사내종    →   죠셉

 

「폭풍의 언덕」이 소설은 1801년 경에 로크우드라는 한 신사가 도시에서부터 은거할 땅을 찾아 이 황야로 들어와 스러쉬크로스 저택을 빌고 <폭풍의 언덕>으로 불리는 저택을 방문하는 데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는 언쇼와 린튼 두 집안의 3대에 걸친 역사를 아는 늙은 가정부 엘린(넬리> 디인에게서 이야기를 유도해 낸다.

 그리하여 이야기는 다시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폭풍의 언덕> 저택의 주인 언쇼씨가 기아를 주워오는 1771년 무렵부터 시작된다. 언쇼씨는 이 아이를 히드클리프라고 이름지어 양육하는데 언쇼씨의 아들 힌들리는 그를 몹시 싫어하여 아버지가 작고한 후로는 히드클리프를 학대하여 마치 머슴처럼 천하게 취급한다. 그러나 힌들리의 여동생 캐더린은 히드클리프를 동정하고 드디어는 두 사람이 열렬히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한 일로 캐더린은 스러쉬크로스 저택의 린튼가의 아들 에드가와 사귀게 되자 히드클리프를 사랑하면서도 에드가의 우아한 태도에 끌려 버린다.

 1778년 힌들리 언쇼는 아들 헤이튼을 얻었는데 부인 프란세스가 출산 후 곧 죽었기 때문에 술과 도박으로 타락해 간다. 한편 캐더린은 히드클리프와의 숙명적인 관계를 느끼면서도 결혼 문제는 별도라고 생각하고 에드가 린튼과 약혼한다. 그녀의 사랑은 이미 사라진 것이라고 느낀 히드클리프는 집을 떠나 어디론가 사라지고 소식이 아주 끊어지고 만다. 캐더린은 그 후 약 3년 후 에드가와 결혼한다.

 린튼 부인이 된 캐더린은 스러쉬크로스의 저택에서의 생활을 시작하는데 평화스런 신혼 생활은 잠시 동안이었다. 어느 날 밤 행방불명이었던 히드클리프가 그 전과 완전히 변한 훌륭한 신사가 되어 홀연히 돌아왔고 캐더린은 이를 반갑게 맞이했기 때문이다. 히드클리프는 돈도 많이 벌고 교양도 있는 신사가 되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자기에게 잔혹했던 힌들리와 캐더린을 빼앗은 에드가에의 복수심에 불타고 있었다. 그는 아내를 잃고 아들 헤이튼과 함께 살고 있는 힌들리의 청을 받아들여 <폭풍의 언덕> 저택에 살면서 캐더린을 열렬히 사랑하고 린튼가와 접근함에 따라 에드가의 여동생 이사벨라를 유혹하여 결혼한다. 그리고 힌들리를 파멸의 길로 몰아넣는다. 히드클리프와 에드가의 사이에서 방황하던 캐더린은 고민 끝에 발광(發狂)한다. 히드클리프는 아내로 맞은 이사벨라를 학대한다.

 발광한 캐더린은 임신 중이었는데 이윽고 에드가의 딸을 낳고 죽는다. 히드클리프는 절망하고 갈수록 잔인한 성격으로 된다. 이사벨라는 히드클리프의 학대에 견디다 못해 멀리 떨어진 런던 부근으로 피해 가서 아들을 낳고 기른다. <폭풍의 언덕> 저택에서는 힌들리가 죽고 히드클리프가 주인이 되어 힌들리의 아들 헤이튼을 무지한 동물과 같이 기른다.

12년이 지났다. 스러쉬크로스 저택에서는 에드가와 캐더린 사이에서 태어난 딸인, 모친과 같은 이름의 캐더린이 아버지 에드가 린튼 밑에서 명랑한 소녀로 자란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이사벨라가 죽는다. 16세가 된 소녀 캐더린과 린튼 소년이 서로 사랑하게 된다. 이 연애를 음흉한 목적에서 적극적으로 성취시키려는 히드클리프와 또한 이를 떼어놓으려고 하는 에드가 린튼과의 사이에서 갈등이 일어나서 복잡한 심리 드라마가 전개된다.

히드클리프는 마침내 책략에 의해서 빈사 상태인 린튼과 캐더린 소녀를 강제로 결혼시킨다. 이에 상심한 헤드가는 곧 죽고 스러쉬크로스 저택의 재산도 모두 히드클리프의 소유가 된다. 린튼 소년도 죽는다. 이렇듯 히드클리프는 탐욕을 채우고 양가(兩家)의 후계자인 헤어튼과 캐더린의 딸을 자기 손아귀에 넣고 지배하며 학대한다. 그러나 히드클리프의 악마적인 소행도 끝날 때가 온다. 18년 동안 가슴속에 품어 오던 캐더린에의 그리움은 이젠 더 이상 억누를 길이 없어 그는 마침내 정신 착란을 일으켜 이듬해 1802년 여름, 폭풍이 부는 어느 날 밤, 캐더린의 환상을 응시하면서 황홀한 속에서 죽어간다. 뒤에 남은 헤어튼과 캐더린은 서로 마음이 접근, 두 사람의 결혼이 예정된다.

 

7. 마무리하며……

 우주에 대한 신비감에서 출발했다고 하는 이 작품은 소설이라기보다는 서정시적 요소(抒情詩的 要素)가 더 많고 희곡적인 요소를 다분히 내포하고 있다고 본다. 에밀리는 이 「폭풍의 언덕」의 한 편으로 그녀의 문학적인 명성을 불후의 것으로 만들었는데, 그렇다면 이 작품의 걸작인 요인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말해 사실주의(寫實主義)와 낭만주의(浪漫主義)가 훌륭하게 살려져 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히드클리프라는 인물의 창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묘까지 파헤쳐 가며 애인을 사모한다는 순정의 소유자면서도 한편으로는 애인을 가로챈 에드가나, 어렸을 때 자기를 학대한 힌들리에 대해서는 잔악한 복수 행위를 자행하는 히드클리프에게서 교양이라는 울에 속박되지 않은, 애증(愛憎)이 진하고 적나라한 인간상을 볼 수 있다. 우리가 히드클리프를 미워하지 못하고 오히려 친근감을 느끼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에서 극과 극의 대결이 선(善)이냐 악(惡)이냐의 판가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선악(善惡)이 한데 어울려 몸부림치며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영혼에 호소하는 간절한 인간의 절규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당시 빅토리아 왕조의 지배적 풍토는 교훈적이고 도덕적이었으므로 이 이상화되지 않은 현실의 인간 히드클리프의 창조야말로 하나의 놀라움이며 또한 소설 문학상에 하나의 헌신적인 암시를 주었다고 할 수 있다.

 

8. 작가의 소개

(1) 에밀리 브론테(Emily Bronte, 1818 ∼ 1848)는 여류작가이며, 살롯 브론테의 동생이다. 1818년 요크셔 목사의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와 백모의 손에서 자랐다. 기숙학교에서 공부했을 때와 교사로서 일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일생을 황량한 황무지에 둘러싸인 요크셔의 목사관에서 지냈다. 목사관에서 집필과 가사일로 지새우던 생활 속에서 그녀의 유일한 즐거움은 히스꽃이 만발한 그 주변을 산책하는 일이었다고 한다. 언니 샬롯과는 달리 결혼도 하지 않은 채, 1848년 30살의 젊은 나이로 죽었다. 1946년에 언니 샬롯, 동생 앤과 함께 셋이서 시집 <커러와 엘리스와 액턴의 시집>을 자비 출판했으나 별 반응을 얻지 못했다. 브론테 가문은 형편이 넉넉지 않았으므로, 조금이라도 생활에 보탬이 될까 해서 세 자매가 함께 공동 시집을 출판했으나 불과 2부밖에 팔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에밀리는 <죄수>, <내 영혼은 비겁하지 않노라> 등의 시에 의해 시인으로서의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녀의 유일한 소설 <폭풍의 언덕>도 출판 당시에는 혹평을 얻었고, 그녀는 그 이듬해에 폐결핵으로 짧은 생애를 마감한다. 그러나 이제 <폭풍의 언덕>은 서정적이면서도 독특한 인생의 깊은 해석으로 사람들에게 순수한 감동을 주고 있다.

(2) 참고 : 샬롯 브론테(Charlotte Bronte 1816 ∼ 1855)는 에밀리 브론테의 언니이다.

 그녀의 대표작 <제인 에어(Jane Eyre)>는 출판 당시 작품의 로맨틱한 내용과 더불어 작중 인물의 강한 개성과, 당시의 인습이나 도덕에 대한 강렬한 반항 등으로 세인들의 주목을 끌었다. 더욱이 이 작품의 작가가 여성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더욱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3) 인간의 본질 탐구

 궁벽한 시골구석에 묻혀, 마치 극지의 꽃처럼 무명의 짧은 생애를 살다 간 한 불행한 여성에 의해 기적적으로 탄생한 <폭풍의 언덕>은 구체적 현실의 세계와 그것을 초월한 정신세계를 그리고 있다. 자연계와 초자연계가 융합하고 있는 영혼의 세계이며, 여기서는 죽음 자체도 최후가 아니라 영혼의 개방이며, 사자의 망령은 생자의 영혼과 신비적으로 교류하고 있다. 마지막 장면에 주인공인 히스클리프가 캐서린의 망령을 보면서 황홀경 속에서 죽는 장면이 바로 그러한 것이다. 사랑이 바로 증오로 바뀔 수 있고, 그 두 감정이 동일한 요소에서 온다는 것도 재미있는 인간 심리의 내면이 아닐까 ? 이 소설은 인간의 본질을 탐구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9. 특기 사항

(1) <폭풍의 언덕>의 원제는 Wuthering Heights인데, 이 워서링이라는 말은 작품 속에 설명되어 있는 대로, 폭풍이 불 때 들려오는 바람의 웅얼거림을 나타내는 방언이다.

 

폭풍의 언덕 1부 (53분:09초) 

 폭풍의 언덕 2부 (53분:12초)

 

영국 소설가 E. 브론티의 작품. 1847년 발표되었다. 요크셔의 황량한 산지에 사는 두 가족의 3대에 걸친 이야기가 히스클리프라는 악마적 정열을 가진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된 작품이다. 히스클리프는 <폭풍의 언덕>이라고 하는 저택의 주인이 데려다 키웠는데, 양부가 죽은 뒤 양부의 아들 힌들리에게서 모욕과 학대를 받게 되며, 양부의 딸 캐서린을 사랑하였으나 버림받고 집을 나간다. 3년 후 <폭풍의 언덕>으로 다시 돌아왔으나 캐서린은 이미 에드거 린튼과 결혼한 뒤였다. 복수심을 품은 히스클리프는 에드거의 누이동생 이사벨라를 유혹하여 아내로 삼아 학대한다. 한편 캐서린은 그의 집요한 애증때문에 딸 캐시를 낳고 죽는다. 히스클리프는 옛 주인 힌들리를 굴복시키고, 그의 아들을 일찍이 자기가 받았던 만큼 학대한다. 그리고 캐시를 자기와 이자벨라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과 무리하게 결혼시켜 린튼집안을 굴복시키려 한다. 그러나 그 복수심도 한계에 이르러, 마침내 캐서린의 환영을 보면서 죽는다. 브론티가 그린 세계는 구체적 현실세계인 동시에 그것을 초월한 정신적 세계, 즉 자연계와 초자연계를 융합한 영혼의 세계이다. 여기에서는 죽음 그 자체도 최후의 것이 아니라 영혼이 열리는 것에 불과하며, 죽은 자의 망령은 살아 있는 영혼과 신비적으로 교류한다. 요크셔의 자연풍경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고, 작중인물의 모순과 부조리도 깊은 시적 진실성으로 표현되고 있다. 작자가 표현하고자 한 것은 사회적 현실과 심리적 진실을 넘은 인간과 세계의 본질에 관한 하나의 비전이며, 가장 높은 시적 차원에서 발상된 비극적인 작품이다. W.S. 몸이 《서밍업(1938)》에서 세계 10대소설의 하나로 꼽았으며, 여러 차례 영화화되었다.

 

서른 살의 나이에 요절한 에밀리 브론테가 죽기 일년 전에 발표한 유일한 소설 작품으로, 황량한 들판 위의 외딴 저택 워더링 하이츠를 무대로 벌어지는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비극적인 사랑, 에드거와 이사벨을 향한 히스클리프의 잔인한 복수를 그리고 있다. 발표 당시 반도덕적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했던 이 작품은 백 년이 지난 오늘날 세익스피어의 <리어왕>. 멜빌의 <백경>과 비교되리 만치 그 비극성과 시성(詩性)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본능적이며 야만적이기까지 한 히스클리프와 오만하면서도 열정적으로 그에게 끌리는 캐서린이라는 이상화되지 않은 현실적 인간을 통해, 작가는 인간 실존의 세계를 강렬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 에밀리 브론테 Emily Bront? 1818년 영국 요크셔 주의 손턴에서 영국 국교회 목사의 넷째 딸로 태어났다. 세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잠시 자매들과 함께 기숙학교에 다녔으나 어린 시절의 대부분은 황량한 황야의 사제관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면서 보냈다. 1835년 언니 샬럿이 미스 울러 학교에 교사 자리를 구하자 에밀리는 학생으로 따라갔다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이기지 못해 3개월 만에 돌아왔다. 1838년에는 에밀리 자신이 미스 패칫 학교에서 6개월간 교사 생활을 했다. 샬럿과 에밀리는 가족들이 집에서 함께 지낼 수 있도록 호어스에 여학교를 열 계획을 세우고, 외국어와 학교 운영을 배우기 위해 1842년 2월 브뤼셀의 에제 기숙학교에 들어갔으나 10월에 이모가 죽자 에밀리는 호어스로 아주 돌아왔다. 샬럿과 에밀리, 앤 세 자매는 1846년 필명을 써서 『커러, 엘리스, 액턴 벨의 시집』을 함께 펴냈다. 이 시집에는 에밀리의 시 21편이 실렸는데, 후대의 비평가들은 한결같이 에밀리에게서 진정한 시인으로서의 재능이 엿보인다고 평가했다. 1847년에는 샬럿의 『제인 에어Jane Eyre』와 에밀리의 『폭풍의 언덕』, 앤의 『아그네스 그레이Agnes Grey』가 차례대로 출간되었다. 『폭풍의 언덕』을 출간한 뒤 에밀리의 건강은 급속히 나빠지기 시작하여 결국 1848년 12월 19일 결핵으로 숨을 거두었다. ●

 

He's more myself than I am... My great miseries in this

world have been Heathcliff's miseries... If all else per-

ished, and he remained, I should still continue to be; and

if all else remained, and he were annihilated, the universe

would turn to a mighty stranger: My love for Linton is

like the foliage in the woods. Time will change it, I'm

well aware, as winter changes the trees - my love for

Heathcliff resembles the eternal rocks beneath...Nelly, I

am Heathcliff! He,s always, always in my mind... as my

own being.'' (Wuthering Heights, Chapter 9)

 

그는 나보다 더 나야... 내가 이 세상에서 겪은 지독한 고통들은 모두

히스클리프의 고통들이었어. 모든 것이 죽어 없어져도 그가 남아 있다

면 나는 계속 존재하는 거야. 하지만 다른 모든 것은 남아 있되, 그가 없

어진다면 우주는 아주 낯선 곳이 되고 말겠지. 린튼에 대한 나의 사랑

은 숲 속의 잎사귀와 같아. 겨울이 되면 나무들의 모습이 달라지듯이 시

간이 흐르면 달라지리라는 걸 난 잘 알고있어. 그러나 히스클리프에 대

한 내 사랑은 그 아래 있는 영원한 바위와 같아... 넬리, 내가 바로 히

스클리프야! 그는 언제나, 언제까지나 내 마음속에 있어. 바로 나 자신

으로 내 마음속에 있는 거야. (폭풍의 언덕' 9장)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

 

폭풍의 언덕은 영국의 작가 에밀리 브론테가 1847년 쓴 소설이다. 에밀리 브론테는 서른 살에 세상을 떠났는데, 이 소설은 그녀가 죽기 일년 전에 발표한 작품이다. 그녀는 황량한 들판 위에 서 있는 외딴 저택인 워더링 하이츠를 무대로 벌어지는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를 썼다. 소설은 캐서린(Catherine Earnshaw)과 히스클리프(Heathcliff)가 벌이는 비극적인 사랑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사랑을 빼앗아간 에드거에 대한 잔인한 복수를 표현하고 있다.

 

[소설의 개요]

폭풍의 언덕에는 워더링 하이츠 저택이 있었다. 그 저택에는 언쇼(Earnshaw) 일가가 살고 있었다. 언쇼에게는 딸 캐서린과 아들 힌들리가 있었다. 워더링 하이츠의 주인 언쇼는 어느 날 리버풀에 갔다가 그곳에서 거지생활을 하고 있는 히스클피프라는 소년을 자신의 저택으로 데리고 온다.
언쇼는 히스클리프를 불쌍하게 여겨 자신의 저택에서 함께 생활하도록 했다. 언쇼의 딸인 캐서린은 히스클리프를 좋아하지만, 아들인 힌들리는 히스클리프에 대한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다.
힌들리는 아버지 언쇼가 세상을 떠나자, 아내와 함께 워더링 하이츠 저택에 들어와 살면서 본격적으로 히스클리프를 미워하고 학대하기 시작했다. 힌들리는 아내가 아이를 낳다가 죽게 되자 더욱 성격이 난폭해진다. 이로 인해 히스클리프는 무척 힘든 생활을 하게 된다.
그 무렵 언쇼의 딸인 캐서린은 마음속으로는 야성적이고 경건한 히스클리프를 좋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저택에 자주 찾아오는 예의 바르고 멋진 신사인 에드거에게 은근히 끌리게 된다. 캐서린이 에드거의 청혼을 받아들일 것으로 생각한 히스클리프는 집을 나가게 된다. 캐서린은 히스클리프가 집을 나간지 삼년 동안 연락이 없자 에드거와 결혼을 하게 된다.
몇 년의 세월이 지난 후 히스클리프는 성공하여 부자가 되어 워더링 하이츠로 돌아온다. 그가 돌아온 이유는 자신을 학대했던 힌들리와 자신의 애인을 빼앗은 에드가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다. 힌들리는 아내가 죽고 나서 도박에 빠져 돈을 모두 날리고 폐인이 된다.
히스클리프는 힌들리를 경제적으로 파탄나게 만들고 위더링 하이츠의 주인이 된다. 마침내 힌들리는 알콜중독으로 세상을 떠난다. 히스클리프는 힌들리의 아들 헤어턴을 머슴처럼 키우면서 학대를 가한다. 예전에 힌들 리가 자신을 머슴처럼 부리고 학대를 했던 것처럼 똑 같이 했다.
그리고 히스클리프는 자신의 애인 캐서린을 뺏아간 에드거의 여동생 이사벨라를 유혹해서 결혼한다. 결혼한 후 히스클리프는 자신의 부인인 이사벨라를 정신적으로 학대하기 시작한다. 결국 이사벨라는 히스클리프의 무관심과 정신적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런던으로 도망가서 아들을 낳는다.
한편 에드거와 결혼했던 캐서린은 외동딸 캐서린을 낳고 정신착란증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에드거는 아내인 캐서린이 남겨놓고 죽은 딸 캐서린을 잘 키워놓는다. 에드거는 자신이 여동생 이사벨라가 죽자 런던으로 가서 이사벨라의 아들이며 히스클리프의 아들이고 자신에게는 조카가 되는 남자아이를 폭풍의 언덕에 데려다 준다.
까다롭고 버릇없는 데다가 허약한 아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히스클리프는 이 아들을 캐서린과 결혼시켜서 스러쉬크로스를 먹어치울 생각을 한다. 히스클리프는 아들을 캐서린과 강제로 결혼시켜 자신의 탐욕을 채운다. 딘 아주머니는 셋방을 구해서 어릴 때부터 모셔온 캐서린 아가씨를 다시 모시기를 원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에드가도 건강이 악화되어 죽자, 히스클리프는 마침내 워더링 하이츠와 스러쉬크로스의 모든 주인이 된다.
그러다가 히스클리프는 비가 몰아치는 날, 눈도 감지 못한 채 죽는다. 죽고 나서 히스클리프는 캐서린의 무덤 옆에 묻히게 된다. 히스클리프가 죽은 다음 헤어틴과 캐서린 사이에서 사랑의 감정이 싹트고 결혼을 앞두면서 폭풍의 집과 드러시크로스 저택의 불행은 끝나고 새로운 희망이 비치기 시작한다.


[소설에 대한 감상]
폭풍의 언덕은 히스클리프가 캐서린을 그토록 사랑했지만, 자신의 불행한 처지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고 그 후 가슴에 한을 품고 어떻게 살다 죽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세상에는 이루지 못하는 사랑이 많다. 이런 사랑은 출발부터 비극을 잉태하게 된다. 스스로 비극을 내포하고 있는 사랑은 결코 적지 않다.
사람들은 왜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도전하게 되는가? 현실적으로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을 가슴에 품고, 그 사랑에 집착하며, 스스로 불행해지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그 사랑을 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해답은 간단하다. 사랑은 의지가 아니고, 감정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무의식에 기초하며, 개인의 의지로 통제되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은 영혼의 문제이며, 단순한 정신적인 작용도 아니고, 육체적인 동작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사람을 움직이고 통제하며 방향을 잡아주는 것이다.
사람은 사랑에 이끌려 사랑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피동적인 존재가 된다. 그것이 사랑의 본질이며, 사랑의 강력한 힘이다. 자신의 마음대로 사랑을 좌지우지 할 수 있고, 사랑의 마력에서 벗어나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랑은 결코 진실하지 못하며, 순수하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면 적어도 강렬한 것이라고 할 수 없는 미적지근한 사랑에 불과하다.
자신이 어쩌지 못하고, 너무나 가슴속에 강렬하게 낙인이 되어 심장과 하나가 되어 버린 사랑은 평생 그 사람을 떠나지 못한다. 그 사람은 그 사랑과 함께 숨쉬고 생각하면서 살아가야 할 운명에 빠지게 된다. 사랑의 운명은 그의 모든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주며, 성격을 변질시키게 된다. 그 영향이 크든 적든 상관 없이 사랑 때문에 받는 영향은 언제나 존재한다.
히스클리프가 언쇼로부터 받은 것도 사랑이었다. 언쇼는 거지와 같은 존재이며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고, 부모가 누구인지도 알 수 없는 소년 히스클피프를 길에서 우연히 만나 동정심을 느끼게 되고, 그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보살펴 주고 키워주었다. 얼마나 숭고한 사랑인가? 모두가 자신을 위해 이기적으로 살아가는데 언쇼와 같은 이타적인 사랑을 실제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은 숭고하며 훌륭한 것이다.
그러나 언쇼의 아들 힌들리는 달랐다. 그는 처음부터 자신의 아버지인 언쇼가 정체도 알 수 없는 히스클리프를 집으로 데려온 것 자체를 못마땅해했다. 그리고 히스클리프를 머슴처럼 부리며 학대하기 시작했다. 학대와 구박은 무서운 범죄다. 자신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박대하며 정신적인 고통을 주는 것은 커다란 죄이다. 불쌍한 사람들을 동정하고 따뜻하게 대해주며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려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냉혈인간들이 많이 있다. 힌들리는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이런 상황속에서 히스클리프는 언쇼의 딸인 캐서린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외딴 저택에서, 황량한 들판을 배경으로 싹트기 시작한 사랑은 깊은 뿌리를 내리게 된다. 사랑은 구체적인 환경에서 자라게 되며, 그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자신에게 커다른 은혜를 베풀어준 언쇼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이 밑에 깔려 있으면서, 자신에게 따뜻하게 대해주는 캐서린에 대한 사랑은 인간적으로 외롭고 불안해하는 히스클리프에게 태양과 같았으며, 봄날 내리는 단비와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그렇게 처음 생겨난 사랑은 영원히 가슴속에 간직된다. 그러나 그 사랑은 외부로부터 공격을 받게 되어 위태롭게 된다. 애써 쌓아던 사랑의 성(城)은 방어할 힘이 없는 남자에게 모래성과 같이 허물어져 간다. 무한경쟁의 영역이 사랑이다. 돈이 없고 힘이 없으며, 상대를 붙잡을 매력이 없으면 쉽게 빼앗기고 짓밟히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은 바로 이런 양면을 가지고 있다. 아무런 장애도 없는 상태에서 순수하게 피어나는 백합이지만, 다른 사람이 끼어들어 경쟁하는 상태가 되면 가시를 숨겨놓은 장미처럼 위험하고 치명적인 상처가 된다. 백합에 넋을 잃고 있다가 장미의 가시에 찔려 죽고 마는 불쌍한 영혼들은 과거나 지금이나 사랑의 전쟁터에서 끊임없이 생겨났다가 소멸해갔다.
사랑은 치열한 전쟁이다. 보이지 않는 무기를 가지고 사랑을 둘러싼, 목숨을 건 전투를 벌인다. 그 전투에서 살아남는 사람은 값진 월계관을 거머진다. 사랑의 전투에서 패배한 사람은 낙오자가 되어 열등감을 느끼며 가슴속에 사랑의 한을 품고 살아가야만 한다.
그 전투에는 반드시 한 사람을 배신한 사람이 존재한다. 사랑의 중심에 서 있는 그 사람은 어느 한 사람에 대한 배신자의 불명예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을 선택해야만 하는 사랑의 숙명은 인간이 만들어놓은 제도적인 산물이다.
두 사람을 동시에 영원히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인간이 만들어놓은 역사적인 율법이었다. 그 율법은 앞으로도 상당히 오랫동안 유효할 것처럼 보인다. 사랑은 반드시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 명확한 선택만을 강요한다. 사랑의 대상을 선택하지 않고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면 나쁜 사람으로 낙인이 찍히게 된다. 애정의 삼각관계를 만들어놓고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은 어느 쪽에서도 대우를 받지 못하며 끝내 불행하게 된다.
그러므로 한 사람을 선택해서 그에 집중하고 다른 사람에게 한눈을 팔지 않는 사람들만이 역사상 위대한 사랑의 성공자라고 칭송을 받아왔다. 선택되지 못한 사람은 조명을 받지 못하고 무대에서 사라지는 조연배우처럼 낯선 도시의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마시며 한을 내뿜어야 한다.
그는 사랑의 패배를 인정해야 하느냐? 다시 도전해야 하느냐? 한을 품고 살아가야 하느냐를 결정해야 한다. 또 다른 선택을 해야 한다. 사랑에 패배한 사람은 그 사랑보다 더 어려운 선택을 강요당하게 된다. 그것이 사랑의 잔인함이며 모순이다.
사랑에서 이긴 사람은 다른 선택을 해서는 안 된다. 다른 선택을 할 필요 없이 그대로 사랑의 명예를 껴안고 살아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사랑에 패배한 낙오자는 또 다른 여러 가지 길을 놓고 중대한 선택을 해야 한다. 어떠한 선택을 하더라도 불행을 벗어날 수는 없다. 이미 닥친 불행을 어떻게 하면 최소화하느냐 하는 정도 차이에 불과하다.
그런데 사랑의 패배자가 사랑에 대한 복수심을 가지고 정면도전하려는 경우가 있다. 아주 드문 일이지만 이러한 사랑의 복수는 역사상 끊임없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벌어졌다.
오늘날에도 사랑의 복수는 여러 형태로 이루어진다. 사랑의 배신자에 대해 직접 복수하는 참혹한 범죄도 많이 발생하고 있다. 배신한 애인을 죽이고 자신도 같이 죽는 사건이다. 배신한 애인이 잘 살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앞길을 막으려고 애쓰는 사람들도 많다. 점잖은 복수는 스스로 성공하고 출세해서 배신한 애인 앞에 나타나는 방법이다.
히스클리프는 사랑을 잃고 워더링 하이츠를 떠난다. 열심히 노력해서 돈을 벌고 성공한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본격적인 복수를 대상들을 상대로 직접적으로 하기 위해 워더링 하이츠로 돌아온다.
그곳에서 히스클리프는 사랑의 복수를 철저하게 벌이기 시작한다. 그는 사랑 때문에 받은 상처를 다른 사람에 대한 공격으로 회복시키기 위한 행동을 계속했다. 그렇다고 그는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다.BR>그러나 그가 캐서린에 대해 가졌던 사랑은 그가 죽은 후에 캐서린의 무덤 옆에 묻히는 것으로 아름답게 표현되고 있다. 현실적으로는 이루지 못했지만, 죽은 후에 함께 묻히고 싶은 사랑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 힘을 가지는가를 알 수 있다. 이루지 못하는 사랑 때문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은 현실을 넘어서도 사랑이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에 다소나마 위안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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