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헌

오동잎 / 최헌

시나브로a 2012. 3. 12. 17:52

 

오동잎 한잎 두잎 떨어지는 가을밤에
그 어디서 들려오나 귀뚜라미 우는 소리
고요하게 흐르는 밤의 정막을
어이해서 너만은 싫다고 울어대나
그 마음 서러움을 가을바람 따라서
너의 마음 멀리 멀리 띄워보내 주려무나
<간주중>
고요하게 흐르는 밤의 정막을
어이해서 너만은 싫다고 울어대나
그 마음 서러움을 가을바람 따라서
너의 마음 멀리 멀리 띄워보내 주려무나
띄워보내 주려무나

 

대마초. 이 신비로운 풀은 한국의 대중음악이란 밭을 풍성하게는커녕 아예 황무지로 만들어버렸다.

1975년 말부터 1976년까지 100명이 넘는 연예인들의 이름이 이른바 '대마초 파동' 명단에 올랐다.

이들은 방송 활동은 물론이고, 밤무대라 부르는 야간업소 활동까지 정지당했다.

 음악인의 입장에선 노래를 부를 수도 새로운 노래를 발표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주위가 온통 절벽이었다"는 신중현의 토로는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었다.

철들기 전부터 해왔던 음악이란 것을 타의에 의해 놓아버려야 한다는 상실감은

 당사자가 아니고서야 감히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신중현, 김추자, 김정호, 김도향, 이장희, 윤형주, 김세환, 임창제, 이종용, 임희숙, 정훈희….

셀 수 없이 많은 음악인들이 이 상실감을 맛보며 뒤로 물러서야 했다.

 열거한 이름들에서 알 수 있듯 이것은 록과 포크로 대변되던 '청년문화'의 명백한 후퇴였다.

그리고, 최헌이 등장했다. 갑자기 등장한 깜짝 스타는 아니다.

그는 김홍탁 등과 함께 일찌감치 히 식스(He 6) 같은 그룹사운드 활동을 해온 뛰어난 보컬리스트였다.

지금이야 '도전1000곡'이나 '비타민'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사람 좋은 아저씨가 됐지만,

그는 한국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목청'의 소유자였다.

그가 히 식스나 검은 나비의 보컬리스트로서 들려줬던 음색은 단순히 '허스키 보이스'란 말로는 설명이 부족한,

 낱말 뜻 그대로의 '소울(영혼)'이 담겨있는 깊이 있는 것이었다.

그 뛰어났던 보컬리스트가 '오동잎'이란 노래를 갖고 홀로서기를 감행하며 솔로 가수로서 성공을 거두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15년 뒤 어느 풍경과 비슷하다.

헤비 메탈 보컬리스트들이 하나둘 솔로 가수로 변신하며 인기를 얻던 1990년을 전후한 어느 풍경.

 '배신자'라며 받았던 비난까지도 비슷하다.

록과 소울에 천착해오던 최헌이 솔로 가수로서 선택한 음악은 이른바 '트로트 고고'라는 음악이었다.

그 뒤에는 안치행과 김기표가 이끌고 있던 '안타 기획'이 있었다.

안치행과 김기표 역시도 영 사운드와 더 멘, 검은 나비 등에서 활동해온 그룹사운드 출신이었다.

이들은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이며 고고 리듬에 친숙한 트로트 멜로디를 얹어 단숨에 대중들을 사로잡았다.

'뽕끼'를 잔뜩 머금은 인상적인 기타 인트로와 이어 나오는 "오동잎 한 잎 두 잎~"이라는

최헌의 진한 보컬에는 이미 성공이라는 미래가 예정되어 있었다.

'밴드맨'들다운 군더더기 없이 말끔한 연주는 덤이었다.

'대마초 파동'이라는 무주공산에서 최헌은 그렇게 홀로 우뚝 설 수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송대관의 '해 뜰 날'과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함께 인기를 얻었지만

송대관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고,

조용필은 대마초 사건에 연루되며 가요계를 떠났다.

 1970년대 후반은 명백하게 '가수왕' 최헌의 시대였다.

그리고 트로트 고고의 시대이기도 했다.

 역시 그룹사운드 출신인 윤수일이 최헌과 비슷한 과정을 거치며 솔로 가수로 데뷔했다.

이번에도 안타 기획의 안치행이 만들어준 '사랑만은 않겠어요'와 함께였다.

김트리오의 '연안부두', 김정수의 '내 마음 당신 곁으로'까지,

안치행과 김기표가 만들어낸 트로트 고고 노래들은 한동안 가요계의 대세가 되었다.

 

이 당시 가요계는 한국 대중음악사의 암흑기로 평가받는다.

실제 재능 있는 상당수 음악인들의 손발이 묶여있기도 했지만,

 유행했던 이런 트로트 고고 음악에 대한 비판적 시각 때문이기도 하다.

이때의 음악들은 상업적이고 퇴행적이었다는 비판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록의 '현지화'라는 측면에서 얘기해볼 수 있는 긍정적 사례일 수도 있었다(

이른바 '뽕 록' 혹은 '록 뽕' 같은 신조어들이 여기 해당될 것이다).

 물론 이 흐름이 지속적이고 이후 완전하게 자리를 잡는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고, 결국 '유행가'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어떤 뚜렷한 목표의식 없이 상업적인 목적으로 만들어낸 음악이 가진 한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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