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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내 전생 이야기/

시나브로a 2009. 8. 16.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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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떠난 자는 어디까지 왔는가...

 

 

                       vikarma  sini

 

 

길을 걷다 멈춰서 뒤를 돌아다 본다.

길 나선 그 곳이 점이 되어 티끌처럼...

 

 

뻥뚫린 창공, 내 갈길을 바라본다.

끝간데 모를 길이 한없는 점같은 티끌...

 

 

온 길 , 갈 길...두 점같은 길이 만나

둥근원이 되어버리고........!

 

 

영겁의 세세월월 길떠난 자는

시작으로 가서 끝으로와,

 

 

끝으로 가서 시작으로 돌.아.오.다 .

 

 

 

AUM ...()...

 

 

Om Mani Padme Hung Chant...Universal Wisdom Foundation

기타











   
      Title-Om Mani Padme Hung Chant
       Artist-Universal Wisdom Foundation
Album-Science and 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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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반말을 잘 못해서 애 먹는데, 일기형식으로 반말로 글을 올리겠습니다. 그 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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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하로 간다, 간다, 해 놓고 삼공재 방문을 자꾸 몇 달을 미루니, 삼공선생님께서도 지치셨을 것이다. 소식이 없으니 함흥차사라고 야단을 치셨다. 문을 열어놓고 오라는데도 안가니 나는 참 바보다. 삼공선생님보다 수행이 높으신 분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 경험으로 그 어데 가서 삼공재의 장한 기운과 접할 수 있을까? 이는 참 감사한 일이다.

 

몇 년 전 도윤이 놓을때, 그때 1일2식으로 마른생식을 침으로 씹어먹고 아침저녁 1일2식 약 한달 쯤 하면서 단전에 불이 붙었었다. 기방이 형성된 것은 아니고 그냥 아랫배 전체가 뜨겁게 후끈후끈 달아올랐다. 그런데 도윤이가 엄마뱃속에서 하늘을 보고 있었다. 산달에 허리쪽을 보고 머리가 아래로 위치해야 태아의 머리뼈와 산모의 엉덩이 뼈가 맞아 순산하기 좋은데,,,반대로 되어서 자연분만이 어렵다 했다. 더구나 태아 머리둘레가 상위 1-2프로 안에 드는 크기다, 100명의 아기가 태어나면 그 중에 머리크기가 제일 크다는 것이다. 4-5군데 병원서 자연분만 위험하다고 안해준단다. 그러다 우리 부부의 간절한 바램으로 지금의 새봄산부인과 원장님이 한 번 해 보잖다. 위험하면 바로 수술들어간다는 조건을 붙이긴 했다. 그때 유도분만으로 아침부터 저녁 8시까지 진통후 겨우 자연분만을 했었다. 진통과정에서 간호사 나오라 하고 내가 산모 양다리를 잡고 삼음교혈을 강하게 지압했었다. 간호사는 그만 포기하고 수술해야 할 정도라고 했었기에 삼음교혈을 강자극했다. 참 무식한 남편이 애기엄마 죽는 것도 모르고 산모도 똥고집으로 수술은 안한다 했었다. 삼음교 강자극 하길 20분 쯤 간호사가 자궁문 열린 것을 보더니 후다닥 의사샘 부르로 뛰어갔다. 의사샘도 급히 오시더니  분만실로 옮기자마자 몇 번 힘주고 도윤이가 태어났었다. 그 이전까진 생식을 하고 호흡을 하면 단전이 후끈후끈 불처럼 뜨겁고, 하루 2-3시간만 자도 피로를 몰랐었는데, 자연분만을 하고나자 단전이 차갑게 식어 버렸다. 호흡을 해도 생식을 해도 미지근하지도 않았다. 그러고 지금까지 어영부영 살았다.

 

도윤이 엄만 일본과 관계가 깊다. 또 이런 소리하면 아리랑 돌도사 사이비 헛소리 한다는 분들도 계실 것이지만, 히히 단군조선이후 부터 일본과도 연관이 깊고 또 지금으로부터 수백년 전 일본에서 권력의 한 중심에 선 여자로서 안타깝게 다스리던 지역이 멸망하기전 뒤따르는 많은 신하들을 두고 적에게 치욕을 당하기 전 깨긋하게 호수에 뛰어내려 자결을 했었다. 그 때 그 부정적인 기억들이 현생에서도 까닭모를 우울증과 비관의 감정으로 괴롭히고 있다. 더구나 나와 관계하여 수천년의 세월 10여회나 자살을 한 과거생이 있다. 그 엄청난 슬픔과 비관 절망 그것은 내가 이번 한 생에 다 풀어 주기엔 내 힘이 너무 부족하다. 그녀의 고통의 원인은 모두 나와 관계된 것이다.

 

발단은 사랑때문이다. 단군조선 이후 삼한시대? 궁중에서 공주를 향한 목숨을 건 나의 사랑때문이다. 이루지 못하고 먼저 내가 죽은 후 공주는 나의 큰 사랑을 깨달았고, 다음생엔 공주가 나를 죽도록 사랑해 주겠다는 염을 했다. 그리고 궁중악사로 태어난 나는 "태"라 불리웠다. 역시 나의 사랑은 "수공주" 궁중악사와 공주의 사랑이 들어나자 악사는 죽을 목숨이였다. 하지만, 수공주가 먼저 자결을 하면서 유언을 하길 "태'를 살려 달라 했다. 그 덕에 태는 다른 공주와 혼례를 치루고 부마의 위치에 올랐다, 두아이를 낳아 살았지만, 수공주의 유품을 꼭 간직하고 잊지못하다 그만 결혼하여 살고 있는 부인의 질투에 의해 태는 죽고 만다. 그리고 수공주를 짝사랑했던 기사영가가 있었다. 고작 궁중악사에게 자신의 사랑을 빼았긴 기사영가는 수천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나를 찾아 온 적이 있었다. 살의가 가득했다. 검은기운이 내 목을 쥐어 짜면서 차원을 넘어서 그 시절 수공주 영가를 위협했다. 물론 작가와 감독은 모르겠지만, 은행나무침대란 영화는 바로 우리들의 전생과 현생의 이야기였다...

그때 수공주가 태인 나를 위해 시를 한 편 유언으로 남겼다.

 

"사랑하는 사람아

너를 잊으려 할 수록

너를 더 사랑하게 되는구나

이 아픔이 잊혀질 때 쯤

내 다시 너를 찾을 수 있을까

내 가슴속 내 사랑은

아직 너를 떠나보내지 못하는데

너는 내게서 멀어져만 가는구나"

 

그 후 되풀이 되는 삶에서 우리는 안타까운 사랑을 할 수밖엔 없었다. 사랑만큼 아픈 것이 있을까? 현 생에서도 나는 서른이 넘도록 여자를 돌처럼 여겼다. 사랑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다. 무의식 중에 그런 마음이 있었다. 최근에 아내의 전생은 백혈병 걸린 소녀였다. 백혈병 걸린 이유도 전전생의 업장이다, 그 전전생에 아내는 명성황후였다. 나는 어릴때부터 민자영을 사모하던 남자였다. 민자영이 입궐 한 후 전생의 나인 홍계훈은 무사가 되었다. 무과에 장원급제를 한 것이다, 그리고 곁에서 민자영, 그러니 맘속의 사랑, 소울매이트인 명성황후를 지켰다. 임오군란땐 황후를 업고 충주로 피신을 했었다. 대원군의 명성황후 국장선포를 듣고 나는 말렸다. 한성으로 가지 말것을, 하지만, 틈을 보아 명성황후는 궁으로 갔다. 대원군을 유배시키고,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갈등은 골이 깊어갔다. 명성황후의 영혼은 이야기 한다, 그때 시아버지와 좀 더 잘 지내고 타협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말했다. 그러니 명성황후 시해사건은 조선을 위해서도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 했다. 광화문을 지키던 홍계훈은 이미 충주에서 한성으로 올라올때 죽음을 예감했었다. 그것이 운명인 것을 짐작했다. 그리고 더 이상 이 한몸으로 명성황후를 지킬 힘이 없다는 것을, 칼 한자루 뽑아들고 총을 들고 대원군을 뒷세운 일본군에 맞섰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총을 맞아 즉사했고, 그 소식을 들은 명성황후는 홍계훈의 죽음에 국모답지 않게 통곡을 했었다. 영혼이 되어서도 명성황후를 모시는 궁녀의 귓뜸이였다.

 

명성황후는 임금이 되려 했다, 우유부단한 고종과 쇄국을 하려는 대원군에 맞서 실질적인 최고권력자가 되려 했던 것이다. 많은 전생을 항상 궁중생활을 했다. 자신의 맘되론 아무것도 하기 힘든 것이 궁의 생활이다. 여인네는 가슴타고 답답한 것이 궁의 생활이기도 하다. 또한 이룰 수 없는 사랑때문에 그 원한들 때문에 최고권력자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명성황후의 가슴아픈 전생들을 안다면 그녀가 왜 그리 권력에 집착했는지도 이해를 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나의 죄가 크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을 수 없다. 윤동주의 서시는 그런 내 마음을 잘 표현하였다. 아내도 어릴적부터 감당하기 힘든 시련들을 당하였다. 그리고 나는 절대 가져선 안될 것을  전생에 가졌다. 국모의 마음을 가졌던 것이다. 그래서 이번 생에서도 나는 돈을 가져서도 안되고 권력을 가져서도, 또한 아내와 자식을 두어서도 안되고 또한 이름이 나도 안되는 업장을 타고났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읽는 곳에 이런 글을 올리는 것도 전생업장으로 볼 때 나는 천벌받는 짖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앞뒤도 모르고 무식한 대책없이 몬 난 나는 상관안한다.

전생이 어디었는가? 업장이 어디 있는가? 있든 말든 상관없다, 오직 현생 이 순간들을 열심히 살면 그 뿐이다.

유독 21일 단식 기간 중에 혼자선 감당하기 힘든 일들도 많이 일어났었다.

1일2식 마른생식으로 철저히 밥물하면서도 또 어떤 업장들이 무더기로 튀어나올지 모른다.

업장이란 큰 업장은 튀어나올때 자칮하면 그 업장에 다칠수도 있다. 도를 높이려면 마장은 더 높아진단다.

헤쳐나가는 방법은 단 하나다. 나약한 몸을 강건하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 몸에 기운이 곧 하나님이다.

올바른 연단으로 기운이 강해지면 넘기힘든 업장들도 쉽게 넘을 수 있다.

경제적으로,

육체적으로,

정신적, 영적으로,

장애가 있을 수록 더 꿋꿋하게 수행하고 연단하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

 

 

아침을 생식 3숟갈 씹어 먹었다. 이제 오후 5시 생식 서너숟갈 씹어 먹고 두시간 후 물을 좀 먹을 것이다. 예전에 1일2식 할 땐 하루종일 일하고 저녁마다 500배씩 절운동을 했으니 지금보다 갈증이 더 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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