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BLUES의 발생
Blues에 있어서 탄생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말의 뜻처럼 갑자기 태어난 것이 아니기에 차라리 발생이란 표현이 더 가깝다.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Blues는 자체 역사에 비해 기록상의 역사가 상당히 짧은 편이다. 또한 Blues에 대한 연구도 Jazz가 발생하고 나서 Jazz의 연구가 진행된 한 참 이후에 이루어졌다고 하니 이만 저만 서러운 음악이 아닐수 없다. 그럼 가장 잘 알려진 얘기로서 Blues의 발생에 대해 들어보자.
Blues의 탄생에 있어 Mississippi강 유역의 Delta지역은 아주 중요한 곳으로 등장한다. Delta 즉, 삼각주 지역은 천연의 비옥한 토지를 제공해주는 곳이기에 목화 재배지와 같은 많은 농장들이 있었으며, 당연히 그 힘든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은 흑인 노예들의 몫이었다. 남북전쟁 전에야 노예란 신분으로 인간대접을 못받았다고 쳐도 전쟁이 끝나면 조금은 나아지리라 믿었던 이들의 처지는 오히려 더 어려워졌다. 남북 전쟁전에는 주인덕에 끼니 걱정은 덜수 있었으나 노예 해방이 되고 나서는 직접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으니 아무 가진것 없는 흑인에게 있어서는 이것마저 여의치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이들은 어쩔수 없이 예전의 노예 생활처럼 다시 농장으로 들어가거나 악조건의 소작농이 되어 힘겨운 노동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가야만 했다. 예전에 '뿌리'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이 영화를 보셨던 분이라면 당시 흑인들의 삶이 얼마나 고된 삶이었나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비인간적인 취급을 받으며 힘든 노동으로 어렵게 하루 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이들에게 거의 유일한 안식은 음악이었다. 비록 음악이라고는 했지만 그들에게 있어선 한을 푸는 방법이었다고 하는 편이 더 가까울 것이다. 힘들 때 모두 어울려 부르는 Field Holler (누가 먼저 선창을 외치면 모두가 같이 따라 하는 형식의 외침)나 Work Song (노동가), Spiritual Song(흑인 영가)등이 바로 그것이다. 지금까지 말했던 상황에서 태어난 음악이기에 Blues엔 필연적으로 분노, 슬픔, 고뇌, 절망감과 같은 인간이 지닌 감정을 다루는 것이 많았으며, Melody 자체도 가슴이 아플정도의 애수를 띈것들이 즐겨 노래되어 왔다. 그 후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기본적인 형식과 Style이 다져진 것이다. 연주자 대부분이 악보를 볼 줄 모르는 탓에 Blues는 입에서 입으로 구전됐으며, 어딜가나 그렇듯 이들중 음감이 뛰어난 사람의 Lead와 그들만의 독특한 정서, 그리고 해방후인 1920년대 초 영국, Scotland, Ireland계와 같은 백인과의 접촉등으로 Blues라는 쟝르의 음악이 확실히 자기 고유의 지위를 확립하게 된다.
위에 글은 가장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말이며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Blues는 1860년대의 남북전쟁 이전에 존재했었음을 확신할 증거 즉, 기록이 없기 때문에 그 존재 여부가 불분명하다. 하지만 Blues가수들간의 생각은(1800년대말과 1900년대초 사이에 활동했던 Artists, 그러니까 지금은 거의 모두 고인이 된 인물들) " ... Blues는 우리 부모나 할아버지때 이전보다 훨씬 오래된 노예제 때도 존재했었다."라는게 이들의 지론이다. 위에서도 언급된 Holler 같은 경우를 보면 보다 확실히 알수가 있는데 집단이 반주 없이 불렀던 노동가는 남북전쟁 이전 시대뿐 아니라 Africa에서까지 발견된다고 한다. 특히 노예로 많이 끌려왔던 서아프리카, 그중에서도 세네갈 같은 곳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다시말해 Holler는 그 감성과 표현의 유사함으로 인해 Blues의 모태가 됐다고 할 수 있다. |
4. BLUES의 발전
지금부터 얘기 할 Blues의 발전에서 많은 종류의 Blues가 등장한다. 의외로 Blues엔 하위 쟝르별로 세분한 말이 많다. 이는 각기 다른 지역으로 Blues가 유입되면서 독특한 지역적 특성을 바탕으로 발전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나누기를 좋아하는 평론가들이나 연구가들의 덕분이기도 하다. 굳이 쟝르를 따지면서 음악을 들을필요는 없지만 한 번 읽어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Blues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몇몇 도움을 준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Songster, 악보, Blues에 관한 출판물과 녹음(Recording)들이 그것이다. 악보나 출판물같은 경우가 Blues를 하려는 흑인Musician에게 절대적인 도움이 된것은 아니지만(대부분이 악보를 볼 줄 몰랐다. 아주 극히 일부만이 악보를 읽었다고 한다) Songster같은 경우는 Blues의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게된다. Songster는 남부 재건 이후의 시대에 활동했던 흑인 Musician의 한 집단으로 발라드, 춤곡, Coon Song, Rack Time등의 레퍼토리를 다뤘는데, 이 Songster들이 옛 전통과 Blues를 연결해주는 다리 역할을 했던 것이다. Papa Charlie Jackson이나 장님이었던 Blind Blake, 농부이자 철도 노동자이기도 했던 Mississippi John Hurt와 같은 사람들이 순회공연을 다니면서 좀 더 많은 음악을 전파 시키고 또한 다른 Musician에게 영양제 역할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Blind Blake처럼 육체적인 결함 때문에, 혹은 체질상 유랑하던 가수들은 생계를 위해 노래와 연주를 했는데 이들 역시 Blues를 알리는데 한 몫을 하게된다. 비록 커다란 무대 같은 것이 아니라 약장사들이 손님을 끌고자 노상에서 하는 쇼에 불과 했지만 이는 더 세속적인 음악 Blues를 더욱더 Blues답게 만들어 놓게 된다.
초기 그러니까 1900년대초의 Blues 음악의 판도를 살펴보면 약간의 의외적인 면을 보게 된다. 그건 다름아닌 여성 Blues Musician의 전성기라고 해도 될 정도로 대부분의 커다란 인기를 가진 Musician은 흑인 여성이었다는 점이다. Bessie Smith나 Ida Cox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정통적인 Blues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부른건 아니지만 곡의 프레이징이라든가 음조는 모두 Blues였기 때문에 이들도 Blues에 포함을 시킨다. *Classic Blues(New York, Chicago등 도시에서 활동했던 여성 Musician들을 마구잡이 식으로 부르던 표현이다)란 이름의 쟝르로... 그럼 흑인 남자 Musician은 전혀 활동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일까? 그건 아니다. 쉽게 말해 요즘 현재시대 상황과 별반 다를것이 없다. 즉, 관객이나 청중들의 요구로 쇼적인 면이 강한 여성보컬을 원하게 되니 그들은 Overground가 된것이고, 반대로 남자 Musician같은 경우는 수요가 없으므로 흥행 제작자의 눈에 띄질 않았으니 Underground가 된 셈이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는 와중에서 상황을 역전시키는 Musician이 나타나게 되는데 남자 Musician도 충분히 Recording으로 흥행에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인물이 나타나게 된다. 그는 다름아닌 전설적인 Bluesman인 Blind Lemon Jefferson이라는 사람이다. 비록 2장의 앨범과 1장의 싱글을 남긴후 눈보라 속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지만 이 Blind Lemon Jefferson의 영향은 너무나 엄청난 것이었다. 대부분의 흑인 가정에 정통 향토 Blues Sound를 선사한 인물이었으며, 이 때가 *Country Blues, *Rural Blues, *Downhome Blues니 하고 불리던 때였는데, 더 세분하자면 Blind Lemon Jefferson은 *Southern Folk Blues(남부 포크 블루스)라는 범주에 반드시 거론되는 사람이다. 이는 나중에 나타나게 되는 *Texas Blues 그리고 *Modern Blues의 효시로 자리매김하는 Artist인 T- Bone Walker에 영향을 주게 된다. *Texas Blues에 있어서 T-Bone Walker 훨씬 이후에 등장하는 유명한 Musician으론 Johnny Winter, 요절한 Stevie Ray Vaughan등이 있다.
다시 Blues의 발생지로 언급되는 Mississippi로 가보자. Mississippi지역의 경우는 다른 지역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인다. *Mississippi Blues 혹은, *Delta Blues로 불리는 이곳의 Blues는 중후하고 육중한 음성을 바탕으로 상당히 진솔하면서도 정교하다. 그 이유는 주민의 대부분이 흑인(백인의 수가 흑인의 수보다 적은 지역이 많았다고 한다.)인 곳이 많았으며, 또한 많은 Blues가수들이 배출된 곳이어서다. 지역적인 이유에서도 Memphis에 인접해 있었고, Chicago의 Recording관계자들이 쉽게 기차편으로 왕래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으며, 이는 반대로 많은 Mississippi Musician들이 Chicago로 이주를 할 수 있었다는 얘기도 된다.이 *Mississippi Blues에 있어서도 선구자적인 인물이 있는데 Charley Patten이라고 *Southern Folk Blues(남부 포크 블루스)의 Blind Lemon Jefferson과 같은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과 동등한 위치에 자리한 사람이다. Charley Patten 이후에도 여러 후배 Musician이 등장하는데 이를테면 Skip James라든가 Bukka White, Sun House같은 인물이 대표적이다. 또한 그 이후에 등장하는 또다른 전설적인 Musician인 Robert Johnson도 있다. Robert Johnson은 향토적인 *Mississippi Blues와 도회적인 *Chicago Blues의 다리와도 같은 역할을 한 인물로 26살이란 나이에 어처구니 없는 죽음(질투심이 강한 애인에게 독살당했다.)으로 생을 달리했지만 이 Robert Johnson의 영향은 상당했다. 동시대 혹은 후에 등장하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명한 Musician들이 이 Robert Johnson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대표주자로는 Elmore James, Johnny Shines, Robert Jr. Lockwood등이 있다.
그럼 이젠 도시적인 Blues로 불리는 1930년대의 *Urban Blues로 가보자. 경제 불황으로 열악한 상황에 있던 New York이라던가 Detroit, Chicago에서는 예전의 것이 아닌 더 크고 세련된 폭발적인 Blues가 유행하게 된다. *Urban Blues의 대명사로 알려진 *Chicago Blues같은 경우는 향토적인 냄새가 진한 *Mississippi Blues가 도시인 Chicago에 유입되면서 도시 사람들의 구미에 맞게 좀더 화려하고 음악적으로도 더 복잡하게 자리하게 된다. 보통 Guitar, Piano, String Bass, Harmonica, Trumpet등 악기적인 편성에서도 상당히 화려해지고 덩치도 커지게 된다. 1930년대에 있어서 Blues Leader를 말하자면 Big Bill Broozy라는 사람을 들수가 있다. 도시적이면서도 Blues의 맛을 내는 향토적 요소가 풍기는 음악을 구사한 인물로 평가되는 인물이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상당히 영향력 있었던 Harmonica 주자로 Sonny Boy Williamson을 꼽을 수 있다. 이 *Chicago Blues의 경우 2차 대전을 전후로 상당히 많은 변모를 하고 더욱 커다란 발전을 하게 되는데, 이에 앞장 섰던 인물은 너무도 유명한 우리에게 Muddy Waters란 이름으로 잘 알려진 McKinley Morganfield라는 인물이다. 이 Muddy Waters 말고도 Elmore James라든가 Howling Wolf , Hound Dog Taylor가 있었고, 이후에 등장하는 Buddy Guy같은 인물도 많은 영향을 행사하게 된다. 참고로 이들에게도 어느 정도의 Style이 있는데 Muddy Waters 같은 경우는 Sun House라든가 Robert Johnson같은 Mississippi Blues에게서, Howling Wolf는 Muddy Waters에게서, Elmore James는 Robert Johnson에게서 각각 영향을 받았다. Detroit에서 활약한 Urban Blues Musician을 들자면 John Lee Hooker를 꼽을 수 있는데, Hooker야 말로 Detroit에서 가장 혁신적이며 많은 작품을 낸 인물이며 80세가 넘은 현재까지도 활동을 하고 있는 몇 안되는 진정한 Bluesman이다.
* Memphis Blues같은 경우는 독자적인 Blues로 발전했다기 보다는 1950년대 Rock N' Roll의 발생에 영향을 준 Blues였다.
1950년대 후반으로 들어서면 또 다른 이름의 Blues가 나타나게 된다. 잘 쓰이지 않는 말이지만 *Soul Blues라고 불리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1950년대의 흑인 음악의 동향은 보다 대중적이 되며, 이에 따라 Blues가 변모를 하게 된다. 주된 이유는 Record시장이 급속도로 커지게 되면서 새로운 유형의 음악들이 빠른 시간안에 널리 퍼지게 된 것이지만 역시 음악이란게 대중의 취향을 따르다 보니 얻게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현재까지 언급된 Blues Musician 가운데서도 가장 대중적인 인물인 B.B. King같은 경우가 대표라고 할 수 있다. B.B. King 말고도 Albert King, Freddie King, Otis Rush, Albert Collins, Robert Cray, Johnny Copeland 등 현재 우리가 가장 많이 접할수 있는 음악을 선사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또한 Soul Blues말고도 Blues는 Rock과 결합을 하게 되는데 BluesRock에 대한 소개는 지금은 폐간된 잡지 월간'Rockit'에 실렸던 글로 대신한다. |
5. BLUES ROCK
(Note: 이 글은 지금은 폐간된 잡지 월간 ROCKIT에 실렸던 김상규님의 글에서 발췌한 것임) 재즈와 더불어 대중음악 역사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바탕을 형성하고 있는 미국의 블루스 음악이 1960년대, 블루스 락이라는 장르를 형성하여 위세를 떨친지도 어느새 꽤 지난 일이 되어 버렸다. 물론 블루스 락이라는 장르에만 집중해서 시각을 고정시킬때에, 대서양 건너편 영국인들이 형성하였던 브리티쉬 블루스 락의 세력 역시 미국을 능가할 정도의 대규모 부대였지만, 원조 격인 미국의 블루스 음악과는 좀 더 다른 복잡하고 다양한 형태로 발전되어 나갔음을 상기할 때에, 고유의 아이덴터티에서 비롯된 독보적인 것임을 깨달을 수 있게 된다.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 수많은 뮤지션들이 1900년대 이래로 미국의 블루스계를 번갈아 짊어지면서 활동해 나갔고, 이는 1950년대 태동되었던 락과 연합하게 되면서 블루스 락이라는 큰 조류를 형성해 나갔다. 그 중에는 기자재 시설이 좋지 않았던 시기에 활동하였다는 이유로 녹음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경우도 있고, 또는 당대에는 방대한 양의 레코딩을 하였으나 음원이 소실되어 전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선배 뮤지션들이 여러 공연과 연주를 통해 보여주었던 예술혼은 여러 후배 뮤지션들을 자극하였고, 이러한 면면한 흐름이 60, 70년대로 이어지면서 블루스 락은 그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해 나갔다. 그 결과,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른 90년대에도 많은 블루스 락 뮤지션들이 자신들의 기량을 담금질하면서 음악 가운데 자신의 혼을 불어넣고 잇다. 최근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는 힙합이나 랩만이 흑인, 아니 미국인들의 정서를 담고 있는 것만은 결코 아니다. 물론 초기의 정서가 퇴색된 감이 없지는 않음에도, 태동된지 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한 애환과 비애를 담아 내고 있는 음악, 바로 Blues인 것이다.
1) 아메리칸 블루스 락 이전, Country Blues 와 Urban Blues ( ~1950년대) 블루스 락이 형성되기 훨씬 이전이었던 미시시피강 삼각지 유역에서, 기타와 하모니카(또는 허밍)의 조합만으로 블루스를 연주하던 연주자들은 컨트리 블루스, 혹은 델타 블루스라는 이름을 지닌 소박하고 단촐한 사운드의 블루스를 연주하였다. 그러한 사운드는 점차 사회가 복잡해짐에 따라 도시형 블루스의 성격을 띄게 되었고, 도시 사람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좀 더 강한 사운드 - 가령 피아노나 베이스를 곁들여서 잼 세션을 가진다던지...-를 내기 위한 갖가지 방법들이 동원된다. 이러한 블루스 락 이전의 초기 블루스들은 대부분이 78회전 짜리 SP 녹음이고, 좋지 않은 음질과 구하기 쉽지 않았다 ... Big Bill Broonzy, Robert Johnson, Willie Dixon등...
2) 아메리칸 블루스 락의 태동 (1950년대~1960년대 중반) 어번 블루스에 일렉트릭 기타와 같은 전자 악기들이 서서히 추가되면서, 블루스는 점차로 리듬앤 블루스로 진화해 나갔고, 이는 50년대 중반. 자연스레 락큰롤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초기 락큰롤과 블루스 락은 마치 닭과 달걀과도 같은 관계로 시작을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서로간에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점차 그 영역을 확장시켜 나가기 시작하였는데, 우리들이 알고 있는 블루스 락의 시작도 바로 락큰롤의 등장과 함께 이루어졌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처럼 락의 출현과 더불어 갑자기 확산되어진 블루스 락에 대하여 , 그 장르의 태동과 전성기를 구분함에 있어서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그 간격은 미미할 따름이거니와 60년대 활동하던 사람들이 70년대, 아니 지금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스타일을 그대로 유지한 채 더욱 뛰어난 작품을 남긴 경우가 비견한 예임을 감안할 때면 더욱 그러하다. 하지마 편의상 블루스 락을 표방한 수많은 그룹들이 미국 뿐만 아니라 대서양 건너 영국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하였던 60년대 중반을 블루스 락의 전성기로 간주한다면, 그 이전의 시기를 태동기로 간주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Elmore James, Sonny Boy Williamson, Muddy Waters, Albert King, Otis Rush, Buddy Guy, John Lee Hooker...
3) 아메리칸 블루스 락의 전성기 (1960년대 중반 ~ 1970년대 초반, 그리고 그 이후) 1960년대 중반으로 들어서면서 우후죽순 격으로 수많은 밴드들이 태생하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에는 백인 뮤지션들이었음에도 흑인들의 정통적인 블루스 연주에 참여하게 된 인물들이 몇 있었다. 미국의 Mike Bloomfield 와 Paul Butterfield와 같은 인물들은 그 원조격에 해당되었으며, 그들이 결성하고 참여하였던 수많은 밴드들은 블루스 락 역사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존재들로 자리매김하고 잇다. 한편 이러한 조류는 영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John Mayall을 비롯하여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는 수많은 그룹들과 대가들이 군웅할거 하였던 것이다. 또한 수많은 그룹들은 블루스를 자신들의 음악적 토양으로 삼은 채, 사이키델릭, 포크, 컨트리와의 유합을 꾀하기도 하였고 그와 같은 음악적인 흐름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폭넓게 확대되어 나갔다.
블루스는 정통적인 미국의 음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몇몇 발빠른 선각자들은 50년대의 미국의 리듬 앤 블루스를 차용하여 태연하게도 자신들 고유의 것처럼 소화해 내는 것을 시도하게 되는데, 바로 John Mayall을 비롯한 Graham Bond, Alexis Korner 와 같은 인물들이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그 결과, 미국의 백인들 - 가령 Paul Butterfield 나 Mike Bloomfield, 그리고 Al Kooper와 같은 사람들이 자신들 앞에서 연주하던 흑인 뮤지션들의 음악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이미 몇 년 전에, 이와 같은 선구적인 영국의 뮤지션들은 흑인들의 블루스 음악과 이를 기저로 탄생된 리듬앤 블루스에 관심을 가지고 그와 같은 음악들을 자신들의 것으로 체계화하는데 성공하였다. 그 여파에 힘입어 화이트 보이 블루스 붐이라는 백인 블루스 락의 개화는 블루스의 본 고장인 미국이 아닌 영국에서 먼저 실현되었고, 이들이 정력적으로 활동하였던 1960년대의 중반은 영. 미 양대륙에 걸쳐 블루스락이 만개한 최절정기로서 팬들에게 기억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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