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스

간략한 재즈역사

시나브로a 2012. 6. 21. 10:24

 

재즈는 꽤나 유서 깊은 음악이다. 최소한 팝음악에 있어서는 블루스 다음으로 오래된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블루스는 이미 1800 년대 후반기에 시작되어 미국의 남부를 중심으로 불려진 음악이고, 재즈는 20 세기가 막 열릴 무렵 랙타임이라던가 뉴올리언스재즈 혹은 딕시랜드 등으로 지금까지 약 100 년의 시간 동안 들려진 음악이다. 사실 다른 음악들은 이에 비해 나이가 몇 살 안된다.

 

록음악은 1950 년 이전을 생각할 수 없는 음악이며, 알엔비도 이 부류에 속한다. 힙합이나 랩은 독자들이 모두 알다시피 1980 년대 위로 거슬러 올라가기 매우 힘든 음악이다. 또 일렉트로닉스라고 불리는 전자음 난무하는 음악들은 ‘전자음’이라는 말이 이미 짐작하게 해주겠지만 전자악기가 나오기 이전에는 존재할 수가 없었다. 결국 재즈는 이른바 팝음악 장르에서 거의 가장 오래된 음악이라고 말해질 수밖에 없다.

 

사실 블루스와 재즈는 100 살이라는 나이를 자랑하는 최고령자이고, 알엔비나 록음악은 약 50 살 정도. 그리고 힙합, 랩, 일렉트로닉스 등의 장르는 20~30 살 정도라고 생각할 수 있다.(여기서 포크는 트래디셔널을 포함하면 100 년이 넘는다고 딴지걸지 말자. 포크라는 명확한 장르가 형성된 것은 50 년 밖에 안됐으며 그 이전의 포크 전통이란 사실 ‘전통음악’이라고 불려야 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이런 사실을 확인하게 되는 것은 아이러니컬하지만 서점에서이다. 각종의 음악과 음악사를 모아놓은 서가로 가서 확인하게 되는 것은, 막대한 분량의 서구 고전음악에 대한 역사서와 입문서와 해설서와 악보들인 것이 일차적인 사실이다. 뭐 바흐라는 서구 고전음악의 첫 번째 성자가 태어난 것이 지금으로부터 300 년이 더 됐으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눈을 팝 쪽으로 돌려보면 거기에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블루스와 재즈의 역사에 관한 책들이 꽤나 꽂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젊음의 음악인 록음악에 대한 책들이 블루스나 재즈에 관한 저술들을 압도하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런 젊은 음악 보다는 이제 호호백발 간달프 나이쯤 되는 재즈나 블루스의 역사에 관한 책들이 많이 눈에 띄는 것이 사실이다. 상식적이다. 서가에서 힙합의 역사나 독일 일렉트로닉스의 역사와 같은 책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예상하는 것은 꽤 무리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래서일까? 재즈는 이제 결코 파퓰러한 음악이 아니다. 누군가가 재즈를 듣고 또 재즈를 즐기고 재즈를 좋아한다고 하면, 우리는 그가 꽤 고상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실제로 음반 판매량에서 보더라도 재즈의 음반 판매량은 전체의 2% 정도를 차지할 뿐이다. 재미없고 지루하다고 정평이 나있고 역사가 300 년이 넘은 서구 클래식 음악이 전체의 5% 정도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실로 놀라운 수치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국내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팝음악의 본고장이라 할만한 영미쪽의 자료를 살펴보더라도 재즈는 음반 판매량의 3% 정도를 맴돌 뿐이기 때문이다. 사실 재즈는 매우 고답적이고 어려우며 이제는 서구 고전음악만큼이나 ‘고전적’이 되어버린 음악이라는 사실이 여기서도 다시 드러나는 것이다. 실제로 재즈는 본고장 미국에서도 이제 그리 파퓰러한 음악이 아니다(케니지를 지금 떠올리셨다면 미안하다. 그를 재즈의 코어한 전통을 이어받아 발전시키는 뮤지션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재즈가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먼저 지적할 수 있는 것은 그게 너무 어렵다는 점이다. 랙타임, 딕시랜드, 뉴올리언스 재즈 처럼 20 세기가 막 밝아오던 무렵의 재즈는 어려운 음악이 아니었다.

매우 단순하면서 경쾌한 박자들과 리듬이 주를 이루었던 이 음악들은 지금의 관점에서 보자면 재즈라고 말하기 어렵게 들릴 정도다. 그리고 1920 년대가 되자 스윙 재즈가 인기를 끌었다. 사실 1920 년대부터 40년대 말까지 재즈하면 스윙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던 스윙 재즈는 이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오락용 음악이었고 댄스뮤직이었다. 지금 들어봐도 어깨가 흔들흔들 하게 되는 이 댄스 플로어용 빅밴드 음악은 재즈가 가장 잘나갔던 시기를 보여준다.

그러나 1930 년대 이래로 만들어진 재즈의 진화는 사람들을 점점 더 재즈를 멀리하게 만들었다. 1930 년대 후반 밥(Bop)이라는 장르가 생겨나게 되는데, 이 장르는 당시 제법이나 실험적인 음악인이었던 레스터 영, 콜맨 호킨스, 로이 엘드리지 등은 이전의 스윙 재즈와는 조금 다른 재즈를 선보였다.

이 음악은 일단 빅밴드 음악에서 탈피해 콤보 밴드로 연주되었고 템포가 스윙보다 더 빨라져 즐거워진 듯하고 각개 연주자의 묘기와 같은 연주가 상당히 자주 등장하면서 들을 꺼리를 제공한 것이 사실이지만, 결정적으로 이 음악은 훨씬 복잡해졌다.

 

즉흥연주 부분이나 멜로디나 화음이나 코드 진행이나 모든 것이 이전의 스윙에 비해서 복잡해졌다. 물론 아직까지는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서 재미가 없다고 표현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스윙보다 확실히 어렵고 복잡한 음악으로 진화해갔음은 틀림없다. 물론 재즈팬의 수를 상당히 줄이는 방향으로의 발전이었다.

 

1950 년대에 발생한 쿨 재즈는 재즈 애호가를 줄이는 방향으로 움직이지는 않았다. 실제로 재즈 뮤지션들 사이에 크게 통용되지는 않는다는 이 장르는 그러나 비밥과는 꽤나 차이가 있는 것으로 들렸다. 전반적으로 상당히 느려진 템포가 제일 먼저 눈에 띄고, 악기들간의 조화 보다는 솔로 악기의 역량이 훨씬 강조되는데다 멜로디가 강조되었고 길어졌다. 리듬이나 멜로디도 사실 상당히 단순한 편으로 변화되었다. 하지만 1950 년대라면 블루스가 백인 음악을 만나 리듬앤블루스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키던 바로 그 무렵이었고, 록음악이 태동하던 바로 그 때였다. 재즈라는 장르는 이미 왕좌를 넘겨 놓은 상태였다.

 

1960 년대로 들어서서 하드 밥이 시작된다. 하드 밥은 이전의 밥, 또는 비밥에서 출발한 음악이라는 점에서 쿨재즈와 동일했던 방식인데, 쿨 재즈와는 확실히 다른 길을 갔다. 선율은 비밥에서 보다 약간 단순해졌지만, 어두운 음색과 드럼의 강조 때문에 음악은 훨씬 거칠고 강해지는 모습을 보였다. 지속적인 스윙의 강조가 처음 듣는 사람들을 흥겹게 만드는 측면도 있었지만 중간 중간 이런 흐름을 끊어버리는 양식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마냥 흥겹게 들을 수 없는 음악이 되어 있었다. 이쯤부터는 솔직히 절대 쉽지 않은 음악이라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는데, 문제는 1960 년대가 아닌가. 록음악이 그 꽂을 피워가던 시기였고 반전과 포크의 강세가 두드러진 시대였다. 어쩌면 이때부터 이미 재즈는 잊혀진 양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재즈의 발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1960 년대 하드밥에서 서서히 그 모습을 변화시키던 재즈는 드디어 프리재즈라는 매우 아방가르드한 양식에 이르게 된다. 프리 재즈는 기본적으로 임프로비제이션(즉흥연주)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개념이었다. 원래 즉흥연주는 재즈의 특징들 중 하나였고 스윙재즈에 있어서도 즉흥연주가 많이 행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하드밥을 넘어서면서 재즈의 새로운 모습은, 모든 규정된 것들을 넘어선다는 시도였다.

 

극단적 임프로비제이션을 통해 재즈 연주가 가진 틀을 모두 무너뜨린다는 느낌이 강한 시도였는데, 두말할 필요가 없겠지만 가장 어려운 재즈가 되었다. 이들은 정해놓은 리듬이나 멜로디나 혹은 템포 조차도 넘어섰다. 그리고 흔히 프리 재즈에서는 피아노가 배제되었는데, 그 이유는 피아노에 의해서 일정한 코드가 제시된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즉 이들은 코드도 멜로디도 템포도 넘어서서 그야말로 자유로운 재즈를 구사하고자 했다. 이쯤되면 이제 재즈 음반 판매량이 3% 정도 밖에 안되는 이유가 바로 성립된다.

 

이후 만들어진 것이 퓨전 재즈였다. 퓨전 재즈는 재즈가 아닌 다른 양식과의 퓨전을 통해 새로운 재즈의 모습을 들려주는 것인데, 1970 년대 록음악과 재즈가 만나게 되면서 록퓨전 재즈가 등장하게 되고 이후 다른 많은 스타일의 음악들과 퓨전됨으로써 여러 가지 변종들을 낳고 있다. 하지만 필자 개인적으로는 1970 년대 이들 많은 퓨전의 모습은 재즈가 이제 더 이상 스스로의 핵심적인 부분을 그대로 계승 발전시킨다거나 다양해지는 것이 불가능했다는 고백이 아닐까도 생각한다. 큰 틀에서 보자면 록퓨전의 재즈가 재즈의 주류를 이루게 된 것이 틀림없이 사실이지만, 그것이 이전까지 재즈가 발달해왔던 양상과는 사뭇 다르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이고, 재즈 내적인 변화가 아니라 재즈와 다른 장르의 혼합으로서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일 것이다.

 

 

사실 오늘날의 재즈는 대략 세가지 정도로 압축된다. 첫째는 오랜 재즈의 명곡들이다. 1920년대에서 1950 년대에 이르는 스윙, 비밥, 쿨 재즈의 이름난 곡들이 우리의 귀에 자주 들려지는 재즈이다.

두 번째는 이미 30 년 동안 퓨전이 행해져온 탓에 이제 벼라별 변종 재즈가 등장하고 랩재즈까지 하나의 장르가 된 상태지만, 퓨전 재즈가 주류 재즈로서 지금도 간혹은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해준다. 하지만 역시 가장 중요하고도 또 가장 대중적인 것은 케니 지를 비롯 몇 안되는 말랑말랑 나긋나긋한 재즈 아티스트들의 음악이다. 사실 재즈라기 보다는 그저 어덜트 컨템퍼러리 팝이라고 불려야 할 이들 음악은 그러나 너무나 작아진 재즈의 시장 때문에 거의 거인처럼 보인다.

 

사실 재즈는 이제 너무 늙은 음악이다. 많은 음악 평론가들은 재즈에 대해 이제 수명이 다했다는 말을 하고 있다. 1970 년대 이래로 이 음악은 이제 더 이상 새로울 게 없게 된, 말 그대로 사체와 같은 음악이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가 재즈를 접하려고 할 때, 그러니까 주류 재즈음악을 즐겨보려고 할 때, 재즈는 결코 우리에게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꾸준히 어려워지고 세련되게 만들어진 음악이 재즈인 것이 틀림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말한 음반 판매량은 재즈가 현재 처한 위치와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면 재즈는 죽은 것일까?

이런 질문에 대해 필자는 재즈라는 음악이 죽었다기 보다는 이 음악이 이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한다. 재즈는 100 년이 된 음악이다. 그 역사에 대한 책이 엄청나게 출판되어 있고 많은 대학들에선 이들 음악을 가르치고 있다. 마치 클래식 음악과 같이.

 

그렇다. 클래식 음악은 그런 면에서 보자면 죽은지 꽤나 오래 된 음악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죽었다 살았다를 말할 그런 상황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그것은 고전이 되었다. 고전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계속 변화 발전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수없이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고 새로운 음악들에 영감을 제공하는 그런 것을 뜻한다. 재즈는 이제 바로 그 고전 음악으로서의 위치를 획득한 것일 뿐이다.

 

 



Noon - Sunny